국내 연구진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전압을 견딜 수 있는 전력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 전압을 높이면 전류에서의 에너지 손실을 줄일 수 있어 전력 소모가 큰 기기를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각종 전자제품과 전기자동차, 풍력발전소 등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여 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문재경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RF/전력부품연구그룹 프로젝트리더 연구진은 신소재인 산화갈륨(Ga2O3)을 이용해 2300V(볼트)의 고전압까지 잘 견디는 전력반도체 트랜지스터인 '금속-산화막-반도체 전계효과 트랜지스터(MOSFET·모스펫)'를 개발했다고 15일 밝혔다. 전력반도체 소자가 견딜 수 있는 전압 한계치(항복전압)가 2000V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 결과는 미국의 국제학술지 '전기화학회(ECS) 고체과학기술 저널' 2월 27일자에 '에디터들의 초이스' 논문으로 게재됐다.
차세대 전력반도체 소재로 각광받고 있는 산화갈륨은 실리콘 같은 기존 반도체 소재들보다 상대적으로 고온과 고전압에서도 반도체 성질을 잘 유지해 반도체칩 소형화, 고효율화가 가능하다. 또 복잡한 공정을 거칠 필요 없이 용액 공정을 통해 고품질의 대면적 웨이퍼를 손쉽게 만들 수 있어 저렴한 비용으로 고성능 소자를 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전기 전도도가 낮아 전류가 잘 흐르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진은 전자가 지나가는 채널과 전극의 디자인을 전기가 잘 통하도록 최적화 하고 누설 전류를 막아 줄 수 있는 반절연체 기판을 사용해 문제를 해결했다. 그 결과 기존에 전력반도체 소자가 견뎠던 최고 전압(1850V)보다 25%가량 높은 2320V급 산화갈륨 전력반도체 소자 기술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발열로 인한 에너지 손실의 원인이 되는 동작 저항도 절반으로 줄었다.
또 연구진이 개발한 산화갈륨 전력반도체 소자를 활용하면 칩 크기를 현재 상용제품보다 30~50% 작게 만들 수 있어 동일한 크기의 웨이퍼로 2~3배 더 많은 칩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문 프로젝트리더는 "본 기술은 대면적 소자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어 초고압직류송전(HVDC) 변환설비나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와 차세대 자동차, 가전제품 등 다양한 산업에 활용 가능하다"며 "세계 첫 산화갈륨 전력반도체 상용화를 목표로 후속 연구를 통해 대면적 소자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번에 개발한 트랜지스터의 구조, 소자설계, 제조공정기술 등 관련 기술에 대한 특허 출원도 완료했다. ETRI는 향후 전력반도체칩 생산회사와 전력변환모듈 생산업체 등에 기술을 이전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시장조사기관 후지의 경제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기계 부품의 전력화 증가 추세로 산화갈륨 전력반도체 시장 규모는 2025년 7031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송경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