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고령화시대 의사 태부족···요양·대학병원서 편법 채용 기승
입력 2019-05-12 16:53 

강원도 한 A요양병원은 80대 후반의 B의사가 환자로 입원해 있지만 재직하는 것으로 돼 있다. B의사는 보호자를 두고 있는 요양환자이지만 A병원으로부터 매달 약 700만원의 월급까지 받고 있다. 그 이유는 A병원이 요양병원 허가 요건을 갖추기 위해 서류상 B의사를 직원으로 채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급이 의사면허증 값인 셈이다. A병원은 편법인 줄 알고 있지만 의사를 구할 수 없어 불가피한 선택을 한 것이다.
고령화에 따른 수요 증가로 요양병원이 급증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해줄 의료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그같은 현상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요양병원은 2010년 866개, 2011년 988개에 이어 2016년 1428개에서 2017년 1529개로 연평균 7%씩 증가하고 있다. 요양병원을 제외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대학병원·종합병원·병원)은 1855개로 요양병원보다 고작 300여 개 많다. 하지만 요양병원에 종사하는 의사는 2016년 기준 5048명으로 현역 활동의사(9만7713명)의 6%가량에 불과하다. 병원급 이상으로 한정(5만6586명)하면 요양병원 의사는 9%다. 고령인구 증가로 요양병원 수요가 늘어날 것을 감안하면 의사와 간호사 부족이 심각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력 부족은 일반 의료기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대학병원에는 PA(Physician Assistant·진료보조인력)라는 게 있다. PA는 주로 간호사나 일반인으로 의료행위나 처방전을 낼 수 없다. 의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PA는 업무가 많은 의사를 보조하는 인력으로서 사실상 대학병원이 인건비 절감을 이유로 도입했지만 부족한 의료인력을 메꾸는 편법 제도로 활용되고 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최근 PA의 불법 의료행위와 관련해 '빅5 병원' 교수 23명을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PA는 현재 4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오는 2030년 의사는 7600명, 간호사는 15만8000명, 약사는 1만명이 부족하고 치과의사와 한의사는 각각 3000명과 1400명이 과잉공급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사 부족인원은 총 면허등록 인원(12만5000명)의 6.1%, 약사 부족인원은 총 면허등록 인원(7만명)의 15.2%에 달한다. 특히 간호사는 총 면허등록 인원 35만9000명의 44.1%가 부족해 인력수급 불균형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한해 신규 배출 인력의 기준이 되는 대학 입학정원은 2017년 기준 의대가 3058명, 약대는 1700명에 불과해 의대 정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인구 1000명당 활동인력을 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의사 3.3명, 간호인력 9.5명이지만 한국은 의사 2.3명(한의사 포함), 간호인력 6명(간호조무사 포함)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국민 1인당 의사에게 외래진료를 받은 횟수는 17회로 OECD 평균(7.4회)의 2배 이상이다.
한 종합병원 원장은 "현장에서 의료인력 부족을 절실하게 체감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의료인력 확충을 반대하는 일부 의료단체 눈치를 보지말고 의대나 간호대학의 입학정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의료인력을 현장에서 활용하려면 수년이 걸리는 만큼 지금 당장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국민이 불행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악의 경우 외국의사를 수입하는 상황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상황인데도 대한의사협회는 의과대학의 신입생 확충에 반대한다. 소위 밥그릇 챙기기에 집착하고 있다. 의협은 "의사가 행복해야 환자가 행복하다"면서 준법진료만을 외치고 있다. 부족한 인사를 확충하지 않고서는 고령화로 늘어난 진료 수요를 결코 감당할 수 없다.
의료인력 부족을 우리보다 앞서 경험하고 있는 일본은 의료관련 규제를 확 풀면서 의료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일본의 초고령 그늘이 의료계에도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의료계는 의사 수가 2017년 말 기준 30만9452명으로 OECD 평균 수준이 되려면 38만명이 되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현재와 같은 의사 인력이 유지되더라도 의사 고령화로 2036년 2만4000명이 부족하다고 후생노동성이 전망한다. 그같은 사안의 심각성을 일본의사협회(JMA)가 인지하고 의과대학 신설과 함께 의대 정원을 늘리자는 데 공감하고 있다. 일본은 80개 의대 정원이 2007년 7600명에서 2013년 9040명으로 늘었지만 의료 수급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간호사의 일부 의료행위 인정(2020년) △장롱 의사면허 연수 후 복직 지원 △의사 부족지역, 과잉지역에 의사 파견 요청 쉽게 △병원 간 중증환자 원격으로 진료지원 △컴퓨터·스마트폰 활용한 온라인 진료 도입과 보험 적용(올해 4월·당뇨 고혈압 뇌혈관질환 한정) △처방의약품 자택에서 수령 가능(2020년) △거동 불편한 환자의 방문마사지 수가적용 △집에서도 신약 임상시험 참가와 데이터 전송 허용 △6만개 조제약국의 공정한 가격경쟁 유도 △관리약제사 복수의 약국에서 겸직 가능하도록 올해 규제 완화 △일반 의약품 판매점(드럭스토어) 디지털화 △소니 올림푸스 히타치 등 전기·정밀기기회사들의 재생의료(바이오) 분야 진출 적극 지원 등 파격적인 조치를 단행하고 있다.
일본 후생성은 의사 부족이 심각한 지역에서 당장 의료행위가 가능한 간호사를 대상으로 2020년부터 일정 기간 연수를 받으면 일부 진료과목의 경우 의사 지시 없이 의료행위를 할 수있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한국은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보건진료원'에서 간호사를 교육시켜 의사가 부족한 지소에 배치해 환자를 진료하도록 한 적이 있다. 최근에는 의학 정보와 지식이 모두 공개돼 있고 인공지능(AI)이 의사를 대체하는 시대인 만큼 한국도 간호사를 교육시켜 의료행위를 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은 의사 부족과 함께 의사 고령화가 일본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수술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주요 수술 통계연보에 따르면 33개 주요 수술 건수는 2012년 170만9706건에서 2017년 184만989건으로 늘었다. 주로 고령층이 환자인 고관절치환술(24.4%), 백내장수술(5.5%), 스텐트삽입술(4.5%), 슬관절치환술(4%) 등의 수술 건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한 병원장은 "수술과 외래진료는 급증하고 있지만 의사는 갈수록 부족해 환자만족도는 떨어지고 의사는 의사대로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공의들의 경우 1주일에 최대 80시간까지 법에 수련시간이 명시돼 있지만 사실상 휴식시간 없이 24시간 대기하고 있다. 또 다른 병원장은 "복지부가 앞으로 닥칠 의료인력 부족의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면서 "밥그릇 챙기기에만 여념이 없는 의사단체들 눈치를 보지 말고 국민을 상대로 설득해 지금부터라도 의료인력 확충에 대한 중장기 플랜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병문 의료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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