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상용차는 미세먼지 해결사로 여겨진다. '미세먼지 주범'이라는 오명을 쓴 경유(디젤) 상용차를 대체할 수 있어서다.
국토교통부가 집계한 올 4월 자동차 등록자료 통계에 따르면 전체 자동차 등록대수는 2334만9310대다. 이 중 경유차는 995만5582대로 휘발유차(1072만4129대) 다음으로 많다.
경유차를 차종별로 살펴보면 승용차가 579만2704대로 가장 많고 상용차에 포함되는 화물차가 302만5643대로 그 다음이다. 승합차는 70만6640대, 특수차는 9만690대다.
화물차를 적재량 기준으로 분류하면 1t 이하 화물차가 289만9936대다. 1t 이하 화물차 10대 중 9대 이상은 경유로 움직인다. LPG나 전기를 사용하는 1t 화물차도 있지만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
화물차 대표주자는 1t 이하 소형 트럭으로 자영업자 증가와 택배 물량 증가에 힘입어 매년 15만대 이상씩 판매되고 있다. 소형 트럭의 대명사인 현대 포터와 기아 봉고는 지난해 각각 9만7266대와 5만8930대 팔렸다.
주로 도심에서 운행하는 소형 경유 트럭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인 미세먼지를 많이 내뿜는다. 미세먼지를 일으키는 주요 오염물질이자 정부가 미세먼지 대책을 세울 때 기준으로 삼는 오염원은 질소산화물이다.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배출되는 질소산화물의 48.3%가 차량에서 발생한다. 질소산화물을 내뿜는 차량의 90.2%는 경유차다. 휘발유차는 5.7%, LPG차는 1.5%다. 경유차 중 트럭에서 발생하는 질소산화물 비중은 61.8%에 달한다.
문제는 더 있다. 소형 트럭은 주로 도심 주거지역에서 배달·택배용으로 운행하는 생활 밀접형 차량이다. 아파트단지나 주택가, 인도 주변에서 짧은 거리를 이동한 뒤 주·정자를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공회전도 자주 한다. 주거지역에서 미세먼지를 일으키는 셈이다.
도시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기차 보급을 확대할 경우 승용차보다는 배달·택배용 소형 상용차에 초점을 맞추는 게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정부는 이에 전기 상용차를 늘리기 위해 보조금과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전기 트럭을 구입하면 국고와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은 최대 2500만원, 개별소비세와 취득세 감면 혜택을 받는다. 여기에 친환경차 보급정책에 따라 2000만원 이상 주고 영업용 화물차 번호판을 구입할 필요없이 신규 발급받을 수 있다. 4000만원이 넘는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국산 1t 트럭의 강자인 현대자동차는 전기 트럭 시장을 잡기 위해 '포터 EV'를 올해 안으로 출시할 예정이다. 포터 EV는 '전기차의 성지'로 자리잡은 제주도에서 우체국 택배차량으로 사용된다. 현대차는 이를 위해 지난 8일 제주도에서 열린 '제6회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에서 우체국물류지원단, 현대캐피탈, 대영채비와 '제주도 친환경 운송차량 도입을 위한 협무협약'을 체결했다.
파워프라자도 한국지엠 라보를 전기트럭으로 개조한 피스 EV에 이어 기아자동차 봉고3를 개조한 전기트럭도 올해 출시할 예정이다.
볼보트럭도 전기 트럭 'FL 일렉트릭' 지난해 공개한 데 이어 올해부터 유럽 시장을 시작으로 판매에 돌입할 계획이다.
[사진제공=MAN]
디젤의 아버지인 루돌프 디젤과 함께 세계 최초로 디젤엔진을 선보인 글로벌 상용차 브랜드인 만트럭버스(MAN Truck bus, 이하 MAN)도 환경규제가 강화되는 유럽 도시를 겨냥해 전기 상용차를 내놨다. 장거리 운송 상용차 부문에서는 디젤엔진이 앞으로도 영향력을 유지하겠지만 단거리 운송 상용차 부문에서는 전기 솔루션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해서다.데이비드 슈나켄베르그 MAN e모빌리티 트럭부문 매니저는 지난달 10일(현지시간) 독일 뮌헨 본사에서 열린 한국 기자단 간담회에서 "짧은 거리를 운행하는 도심용 상용차는 전기차로 빠르게 대체될 것"이라며 "오는 2026년까지 유럽 도심에서 전기 상용차 비중은 50%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MAN은 도심용 전기 상용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내놓은 상용차는 배달·택배용 전기밴 eTGE다. eTGE는 지난해 7월부터 독일, 오스트리아, 벨기에, 프랑스, 노르웨이, 네달란드 등 유럽에서 판매에 들어갔다. 독일에서만 지난해 3개월 동안 200대 이상 판매돼 만의 수요 예측을 뛰어넘었다. '깨끗한 배달의 기수'로 정착하고 있는 것이다.
MAN은 한국에 eTGE를 출시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이달 초 한국을 찾은 요하킴 드리스 MAN 회장은 지난 2일 열린 만트럭버스코리아 미디어간담회에서 "만은 순수 소형 전기밴인 eTGE를 지난해 출시한데 이어 장거리 운송용 중대형 전기 트럭인 eTGM 9대를 오스트리아에서 시범운행 중"이라며 "한국 내 수요를 면밀히 분석해 eTGE 한국 출시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드리스 회장은 "택배 급증으로 근거리 운송의 친환경성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는데 한국도 온라인 쇼핑 규모가 큰 것으로 알고 있다"며 "도심 배송만을 담당하는 전동화 차량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데 eTGE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MAN이 국내 출시를 검토 중인 전기밴 eTGE는 TGE의 전기 버전이다. 폭스바겐그룹 소속인 MAN은 eTGE 디자인과 파워트레인을 폭스바겐과 공유했다.
외모는 폭스바겐 상용밴 '크래프터'와 비슷하다. 그릴 부분에 삽입된 'MAN' 글자와 사자 모양 엠블럼을 제외하면 한 눈에 차이점을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다. 전기 파워트레인은 폭스바겐 e골프와 같다.
전기모터는 보닛에 들어있다. 최고출력은 100kW(136마력), 최대토크는 29.6kg.m, 최고속도는 90km/h다. 배터리는 적재공간 손실을 막기 위해 차체 바닥에 적재됐다. 용량은 36kWh로 급속 충전하면 45분 만에 최대 80%까지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다. 7.2kW AC 충전기를 사용하면 완충까지 5시간 20분 걸린다.
eTGE는 열선을 시트와 앞 유리에 적용했다. 전기차는 엔진 열을 이용해 난방하는 내연기관 차와 달리 배터리로 열을 내고 앞 유리에 발생하는 성에를 없앤다. 히터를 작동하면 주행거리가 짧아질 수밖에 없다. 만은 열선을 이용한 히팅 시트와 앞 유리가 히터보다 전기소모를 줄여준다고 설명했다.
전장x전폭x전고는 5986x2040x2590mm다. 화물 적재 공간은 가로x세로가 3450x1832mm다. 적재용량은 950kg이다. 근거리 운송에 필요한 무게는 500~750kg으로
[사진제공=MAN]
시승 장소는 독일 뮌헨 인근에 자리잡은 MAN 테스트 트랙이다. 시승은 1.3km 코스를 두 바퀴 도는 방식으로 진행됐다.전원을 넣기 위해서는 버튼을 누리는 대신 키를 돌려야 한다. 턴 키 방식이다. 전압 제어로 모터 자체 속도를 제어하는 전기차이기 때문에 변속기가 필요없지만 일반 내연기관 자동차에 적용한 기어레버를 채택해 전진·후진한다. 내연기관 자동차와 비슷한 장치 때문에 이질감이 줄어든다는 장점이 생기는 반면 전기차가 지닌 디지털 이미지는 반감된다.
짧은 보닛과 높은 시트 포지션, 승용차보다 각이 세워진 앞 유리 때문에 운전석에 앉으면 시야가 넓다. 전원을 넣은 뒤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는데도 eTGE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전기차 특징이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일반 전기차보다 묵직함이 발끝으로 전달된다. 3.5t에 달하는 무게감도 느껴진다. 그러나 출발 이후에는 조용히 작동하고 조용히 움직이는 전형적인 전기차 특성을 보여준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차체가 즉각 반응하면서 빠르게 가속한다. 콘센트를 꼽자마자 전원이 켜지는 것과 같다.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서서히 감속하는 내연기관 차와 달리 강하게 속도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느껴진다. 엔진브레이크를 갑자기 작동시킨 느낌과 비슷하다. 브레이크를 밟거나 감속할 때 손실되는 에너지를 모아 배터리에 충전하는 회생제동장치가 작동해서다.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도심에서 충전거리를 늘려주는 데 효과적인 장치다. 가속페달에서 발을 뗀 상태로 있으면 차는 완전히 멈춘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아도 된다.
곡선 구간은 안정적으로 통과한다. 배터리 때문에 무게중심이 낮아진 효과다. 안전장치에는 전방 추돌 위험 예방 시스템, 긴급 제동 시스템, 사각지대 사고 예방 시스템, 리어 뷰 카메라 등이 있다.
1회 충전 때 주행가능 거리(유럽 NEDC 기준)는 173km다. MAN은 이에 대해 독일에서 상용밴 하루 운행 거리는 60~80km 수준이어서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최고속도에 90km/h에 불과하다는 지적에도 도심에서 배달할 때 90km/h 이상 속도를 낼 일이 없다고 설명했다.
eTGE가 국내 판매될 경우 택배차량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교통연구원 화물운송시장정보센터가 올 2월 발행한 '2017 화물운송시장 동향'에 따르면 택배화물 차주의 월평균 지출액에서 유류비(유가보조금 환급액 반영) 비중은 30.7%에 달했다. 연비는 4.7km/ℓ에 불과했다. 택배화물차량의 하루 평균 운행거리는 47km이고 평균 운행속도는 5.8km/h로 조사됐다. eTGE를 택배차량으로 사용할 경우 주행거리와 최고속도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물론 유류비 부담도 크게 덜 수 있다는 뜻이다.
[뮌헨=디지털뉴스국 최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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