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닝쇼크 빠진 韓 간판기업…높아진 中 의존도에 직격탄

중국 악재에 국내 주요 업종 간판 기업들이 올 1분기에 예상(컨센서스)보다 낮은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고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의 경우 높아진 중국 의존도를 볼모로 가격 인하 압박에 시달리고 있고 디스플레이와 태양광은 중국 내 저가 제품 물량 공세에 제값을 못 받아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유·화학 사업의 실적 부진을 만회해줘야 할 전기차 배터리 사업은 여전히 중국의 '배터리 한한령(한국산 금지령)'에 묶여 있어 적자가 지속되고 있고 자동차 부품 업체들은 최근 현대·기아차 중국 공장 가동 중단의 여파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1일 금융감독원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반도체(삼성전자 SK하이닉스), 차 부품(현대모비스 만도 현대위아), 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 배터리(LG화학 SK이노베이션), 화장품(아모레퍼시픽), 태양광(OCI) 등 6대 업종 10곳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은 모두 컨센서스보다 낮았다.

당초 이들 10곳의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9조8549억원이었지만 실제로는 8조7605억원에 그쳐 예상보다 11.1% 낮은 '성적표'를 제출한 셈이다. 통상 컨센서스 대비 10% 낮으면 '어닝쇼크'로 분류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올 1분기에 각각 6조2333억원, 1조3665억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작년 동기 대비 각각 60.2%, 68.7%나 감소한 것이다. 컨센서스 대비 각각 12.2%, 2.7% 낮았다. 이 같은 '반도체 투톱'의 실적 하락은 D램 가격이 지난 1분기에 20% 이상 하락했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선 반도체 가격 하락에 대해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의 반도체 수요 부진으로 재고가 쌓이면서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삼성전자 실적을 예상보다 더 크게 훼손시키고 있다는 의견이다.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YMT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스)는 작년 하반기부터 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시작해 공급과잉을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 중국 반독점 당국은 작년부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상대로 반도체 가격 담합 여부를 조사하며 가격 인하 압박까지 병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업체 모두 중국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어 이 같은 중국 요구를 묵살하기 어려운 처지다. 삼성전자의 전체 매출에서 중국 매출 비중(개별 기준)은 작년에 32.2%를 기록해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2017년 33.5%였던 중국 비중이 작년에 39%까지 치솟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매출의 30%를 차지하는 주요 고객인 중국의 가격 인하 압박이 지난 1분기에 예상보다 컸던 것"이라고 말했다.
LG디스플레이는 올 1분기 영업손실로 1320억원을 신고했다.
중국은 10여 년 전부터 디스플레이 산업을 집중 육성해 '초저가' 전략으로 액정표시장치(LCD) 물량을 급격히 늘려왔다. LG디스플레이의 작년 중국 매출 비중은 62.6%에 달한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중국 BOE와 HKC, CSOT의 신규 공장 가동이 본격화되며 LCD 패널 산업의 공급과잉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태양광 대표주자인 OCI는 작년 4분기에 이어 올 1분기에도 적자를 내며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원인은 디스플레이와 마찬가지로 중국산 저가 제품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올 1분기에 배터리 사업에서 각각 1479억원, 86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여기에 주력 사업인 정유·화학의 실적 부진까지 겹치며 두 업체 모두 작년 1분기 대비 영업이익이 반 토막 이상 난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선 이들 업체의 실적 안정성을 위해선 배터리 사업에서 의미 있는 성과가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다. 앞서 중국은 2016년부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조치로 한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자동차는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해왔다.
사드 악재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모레퍼시픽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은 186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9% 감소했고 컨센서스 대비 10.7% 밑돌았다.
향후 실적은 업종별로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반도체와 태양광, 디스플레이의 경우 중국의 주력 산업 육성정책(중국제조 2025)과 함께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고전이 예상되는 반면 차 부품과 화장품, 배터리 업종은 올 1분기에 일시적 비용 요인이 몰린 것이고 향후에는 실적 턴어라운드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올 2분기 예상 영업이익은 6조8077억원으로 지난 1분기보다는 다소 증가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전년 동기 대비 54.2% 감소하는 것으로 나온다. 중국 의존도가 심화되는 와중에 작년 수준의 반도체 실적 회복은 시기상조라는 뜻이다.
차 부품 업체 현대모비스의 경우 국내 신차 판매 호조로 중국 공장 악재를 극복할 전망이다. 중국 매출 비중이 2017년 18.7%에서 작년 17.7%로 낮아지며 중국 의존도가 낮아지는 것도 호재다.
배터리 업체들은 당장 2분기보다 내년 이후를 바라보고 있다. 최근 삼성SDI의 배터리가 적용된 중국 진캉자동차 전기차가 중국 정부의 형식승인을 받으면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권성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중국 당국이 한국산 배터리 탑재 전기차를 승인한 건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했던 정책에 변화가 발생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문일호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