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당신은 9초마다 CCTV에 포착된다"
입력 2019-04-30 13:55 
아담 브룸버그&올리버 차나린 '정신은 뼈다'

한 남자가 난관이 없는 다리를 걸어가다가 실수로 강물에 빠진다. 주변에 사람이 있었다면 구해주려고 노력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CCTV만 이 장면을 목격했다. 냉정한 감시카메라는 아무 감정 없이 사람들의 눈길이 미치지 못한 곳을 속속들이 비춘다. 몰래 차에서 애정 행각을 벌이는 남녀, 수술실, 번개와 화산 폭발 등 자연 재해까지.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우리는 9초에 한번씩 CCTV에 포착된다고 한다. 개인의 일상 대부분을 감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서울 신사동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상영중인 중국 현대미술가 쉬빙(64) 영상 작품 '잠자리의 눈'은 중국 전역에 설치된 CCTV 녹화분을 담았다. 아무 연관도 없는 사람들이 찍힌 녹화 장면들로 영화 스토리를 엮었다. 여자주인공 칭팅(잠자리)이 사찰을 떠나 속세로 돌아온 후 농장에서 남자 주인공 케판을 만난다. 그런데 케판이 범죄를 저지르다 감옥에 가자 칭팅은 떠난버린다. 케판은 칭팅을 찾아헤매다가 너무 그리운 나머지 그녀의 얼굴로 성형 수술을 한다는 황당한 줄거리다.
쉬빙은 2017년 중국 감시카메라 영상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내려받은 1만 시간 분량 영상을 일일이 다 본 후 81분 영화로 제작했다.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는데 이번 미술관 전시를 위해 9분 14초로 압축됐다. 작가는 영화에 등장시킨 사람들의 초상권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중국에선 전혀 법에 저촉되지 않는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CCTV가 인권을 침해하는데도 법은 기술을 따라가지 못했다.
쉬빙 '잠자리의 눈'
코리아나미술관 기획전 '보안이 강화되었습니다'는 우리 일상을 침투한 CCTV 감시를 다각도로 조명한다. 쉬빙을 비롯해 영국 작가 제인&루이스 윌슨, 아담 브룸버그 & 올리버 차나린, 미국 작가 이팀, 에반 로스, 한국 작가 언메이크랩, 신정균, 이은희, 한경우 등 7개팀이 작품을 펼쳤다.
아담 브룸버그&올리버 차나린은 안면인식 시스템을 비판한 디지털 초상화 작품 '정신은 뼈다'를 걸었다. 렌즈 4개가 1초 간격으로 얼굴을 캡처하면서 이미지 데이터를 수집하고 두개골 윤곽에 따라 3D 얼굴 모형을 만드는 안면인식 소프트웨어가 사용됐다.
쌍둥이 자매 제인과 루이스 윌슨은 2010년 두바이 한 호텔의 230호실에서 발생한 암살사건을 찍은 CCTV 영상을 토대로 만든 '얼굴 스크립팅: 그 빌딩은 무엇을 보았는가?'를 선보였다. 두바이 경찰이 범인을 잡기 위해 유튜브에 공개한 영상을 활용했다.
에반 로스 작품은 2014년부터 지속해오고 있는 '인터넷 캐시 자화상 시리즈' 일환이다. 지난 3월 한 달간 작가의 노트북에 남겨져 있던 인터넷 캐시 데이터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그의 사적인 온라인 활동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눈길을 끈다. 전시는 7월 6일까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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