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명상은 사고력 집중 훈련…마음의 안정에 더해 성취까지"
입력 2019-04-29 13:32  | 수정 2019-04-30 15:18
한국명상지도자협회 이사장과 금강선원 큰스님 역할을 맡고 있는 혜거스님. [사진 = 한경우 기자]

"태고 적부터 인류가 한 단계씩 향상한 배경에는 집중이 있었습니다. 나무통이 굴러가는 걸 유심히 보고 바퀴를 만들었고, 새의 발자국에서 상형문자가 탄생했죠. 모두 관찰과 집중의 결과입니다."
최근 서울 강남구 금강선원에서 만난 혜거스님은 종교를 떠나 모든 사람들이 명상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명상을 통해 육체의 건강, 마음의 안정에 더해 성취의 바탕이 되는 집중력까지 향상시킬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 "집중력 키우면 자기 분야의 대가(大家)가 될 수 있어"
'목숨을 걸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목표를 반드시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낼 때 사람들은 이 말을 쓴다. 혜거스님은 진정으로 '목숨을 거는 과정'에서 발심(發心·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냄)이 이뤄진다고 말한다.
그는 "가장 발심이 잘 되는 사람은 죽음의 직전한 사람"이라며 "천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위기에 처한 사람에게 살 방법으로 찾으라고 하면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게 된다. 밥 먹는 것, 잠 자는 것을 잊게 되는 게 집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집중을 한다는 게 쉽지는 않다. 혜거스님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는 "선방에서 참선할 때 (집중이) 잘 안 될 때 굉장히 괴로웠다"며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짓을 했다"고 회상했다.
그가 했던 '온갖 짓'은 금강선원에서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명상 교재에 담겼다. 금강선원에서 명상을 배운 학생들은 학업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룬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배우는 명상법을 가르쳤지만, 곧 필요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아이들에게는 탐진치(貪瞋癡·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으로 열반에 이르는 걸 방해하는 세 가지 독)가 없어서죠.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곧바로 집중력과 지구력을 키우는 교육을 합니다."
◆ "삼매 통해 마음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야"
[사진 = 한경우 기자]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사람들은 탐진치를 닦아 내는 과정이 우선이다. 혜거스님은 이 과정을 두고 "습관을 고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욕심으로 왜곡된 마음의 거울을 닦아 대상 본질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도록 하는 과정이다.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완전히 해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는 '삼매(三昧·한 가지에만 마음을 집중시키는 일심불란의 경지)'를 통해 이뤄진다. 삼매를 체험할 때 자신의 업(業)이 바뀌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고 혜거스님은 말한다.
삼매는 순간삼매와 무한삼매로 나뉜다. 순간삼매는 어떤 대상에 집중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시간이 흐르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반대로 무한삼매는 구운몽의 성진처럼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한 사람의 일생을 체험하는 경험이다.
그러나 시간 인식을 초월할 정도로 집중하는 게 모두 삼매는 아니다. 대상을 잘못 정하는 경우가 있어서다.

명상의 대상을 화두라고 한다. 혜거스님은 "화두를 분석하면 망(亡)"이라며 "명상은 말(논리)로 하는 게 아니라 현상으로 나타난다. 그 현상은 같은 화두를 두고도 삼매를 겪을 때마다 다르다"고 설명했다.
삼매를 통해 대상의 본질을 보는 경험도 반복을 통해 숙달할 수 있다. 혜거스님은 이를 "마음의 거울에 묻은 먼지를 닦아 낸다"고 표현했다. 계속해서 먼지를 닦아내 거울이 맑아지면 대상을 보는 즉시 '본질이 보이게(삼매를 경험하게)' 된다. 이 경지가 참선의 극치인 '대경즉응(對鏡卽應·거울을 대하면 곧바로 응답하다)'이라고 혜거스님은 설명했다.
물론 대경즉응의 경지에 오른 뒤에도 이를 유지하기 위한 명상은 계속돼야 한다. 거울을 깨끗이 닦은 뒤 방치하면 다시 먼지가 묻어 대상을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 명상지도자협회, 한국 명상 문화 활성화·세계화 추진
종교를 떠나 명상을 해야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현대사회를 살면서 형성된 잘못된 습관을 고치는 데 있다고 혜거스님은 강조한다. 효율을 추구하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갈등과 경쟁'이 습관화됐다는 진단이다.
"인간의 본선은 다 착합니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눈물이 나고 무엇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요.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만든 습관에 의해서 인간의 본성에 역행하고 있습니다. 싸워서 이기면 빼앗고, 빼앗기면 다시 빼앗으려 하는 예쁘지 않은 과정이 반복되고 있지요. 명상을 통해 이를 바르게 만들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혜거스님은 한국 사회에 명상을 퍼뜨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우선 그가 이끌고 있는 한국명상지도자협회는 3년 전부터 명상지도자 양성에 나섰다. 아직 지도자를 배출하지는 못했지만, 매년 100명 이상씩 입문한다고 한다. 혜거스님의 목표는 몇만명 수준의 명상지도자 배출이다. 그 정도의 명상 지도자가 있어야 명상이 한국인들의 생활 속에 자리 잡고, 한국 명상의 세계화를 추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미 미국에서는 현대사회의 병폐를 치유할 대안으로 최근 명상이 각광받고 있으며 특히 한국식 간화선(看話禪·화두를 들고 수행하는 참선법)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혜거스님은 전했다.
또 오는 6월 1일 서울 여의도 물빛광장에서 '제2회 한강 걷기 명상 대회'를 개최한다. 걸으면서 명상을 한다는 게 낯설 수 있지만, 혜거스님은 "명상은 행주좌와(行住坐臥)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한 대상에 집중해 따라가면 힘든 줄도 모르고 먼 거리에 이르는 삼매를 경험할 수 있다.
행사는 한강변 3km 코스를 걸으며 명상을 하는 프로그램 외에도 다양한 체험·부대 행사도 진행될 예정이다.
혜거스님은 "지구력과 집중력을 향상시키기에 가장 뛰어난 방법이 명상"이라며 "이를 수행하고 단련하는 행사에 참가하면 자신도 모르게 집중력과 지구력을 훈련하는 마음을 먹게 되고, 잘못 보고 듣고 배워 갖게 된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맑은 기운을 얻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명상지도자협회는 향후 걷기 명상 대회의 코스를 서울에서 목포나 부산까지로 확대할 계획이다.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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