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전두환 정권, 미국 '이희호 면담' 막았다…외교문서로 확인
입력 2019-04-23 10:28  | 수정 2019-04-30 11:05
전두환 정권 당시 외무부 관계자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에 대한 생활비 전달과 면담 문제를 놓고 주한 미국대사관 측과 설전을 벌인 사실이 외교문서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오늘(23일)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입수한 비밀 해제 외교문서에 따르면, 미 대사관은 김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금되고 가족들이 가택 연금돼 있던 1980년 12월 1일쯤 이희호 여사에게 생활비를 전달하고 면담할 수 있게 해달라고 외무부에 요청했습니다.


미 대사관이 대신 전달해달라며 각계에서 보내오는 생활비를 이 여사에게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지, 또 이 여사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면담이 가능한지 등을 외무부에 타진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외무부는 미 대사관 정무참사관에 생활비 전달에 대해 "장려하지 않는다"고 선을 긋고, 면담 요청에 대해선 "매우 불유쾌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당시 면담 속기록을 보면, 외무부 미주국 심의관은 생활비 전달과 관련해, "송금액이 단순한 생계보조비 이상으로 거액이거나, 의연금 모금 캠페인 등이 발생해 언론에 보도되는 등 정치적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기 바란다"고 엄중 경고했습니다.

그는 미 대사관 정무참사관이 "이 문제를 제기한 이유는 우편물이 중도에서 검열되거나 가족에게 전달되지 않을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라며 검열 가능성을 제기하자, "정부가 특정인에 대한 우편물 전달에 관여할 바가 아니다"라며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이 여사와의 면담 문제를 놓고는 더 날카로운 설전이 오갔습니다.

외무부 심의관은 "외국 공관원이 내란음모죄로 재판이 진행 중인 피고인의 가족을 방문해 건강 상태를 확인하겠다는 것은 아무리 우방국 간이라 할지라도 일반적 외교활동의 범주를 벗어난 것일 뿐 아니라,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는 현시점에서 불필요한 잡음을 일으킬 소지가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항의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방문이 조사 목적에서 이뤄진다는 데 대해서는 주재국 정부에 대한 예양(禮讓)상 극히 바람직하지 못할 뿐 아니라 우리 정부로서는 이를 매우 불유쾌하게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미 대사관 정무참사관은 "외교 예양을 언급했는데, 미 정부는 미국 내 각국 공관에 대해 최대한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고 있다"면서 "이미 김영삼과 면회하려다 실패한 바 있으며 김대중 가족에 대해서도 같은 결과일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런 조치에 대해 매우 실망이 크다"고 맞받았습니다.

그는 "본국 정부로부터 이 문제에 관해 어떤 반응이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한국 측의 회답을 곧 보고하겠으며, 워싱턴의 반응이 어떨지 모르겠다"고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이 같은 대화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도 사후 보고됐습니다.

김병기 의원은 "전두환 정권은 이희호 여사에 대한 미국 정부의 인도적인 도움마저 의도적으로 차단했다"며 "5·18 민주화운동,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 국내 정치 상황이 외국으로 퍼져나갈 가능성을 철저히 통제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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