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63) 전 법무부 차관과 관련한 성범죄·뇌물수수 의혹의 핵심 인물인 건설업자 윤중천(58) 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습니다.
윤씨를 개인 비리 혐의로 구속한 뒤 김 전 차관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하려던 검찰 수사에는 제동이 걸렸습니다.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번 사건의 특성상 남아 있는 증거가 많지 않기에 김 전 차관의 범죄사실을 밝혀내기 위해선 윤씨가 적극적으로 진술에 나서야 합니다. 그러나 구속영장 기각으로 애초 비협조적이던 윤씨가 협조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 상황입니다.
서울중앙지법 신종열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9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을 열어 윤씨를 구속할 필요성이 있는지 심리한 뒤 같은 날 오후 9시 10분쯤 구속영장을 기각했습니다.
신 부장판사는 "현 단계에서 피의자조사를 위한 48시간의 체포 시한을 넘겨 피의자를 계속 구금하여야 할 필요성 및 그 구속의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신 부장판사는 수사를 개시한 시기와 경위, 영장청구서에 기재된 범죄 혐의의 내용과 성격, 주요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 정도에 비춰 구속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피의자 체포 경위와 체포 이후의 수사 경과,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필요성, 수사 및 영장 심문 과정에서 피의자의 태도, 피의자의 주거 현황 등도 고려해 영장을 기각했다고 부연했습니다.
법원이 영장 기각 사유로 '수사를 개시한 시기와 경위'를 언급한 것을 이례적으로, 윤씨 측이 제기한 검찰의 '별건 수사'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앞서 법무부 검찰과사위원회 수사권고 관련 수사단(단장 여환섭 청주지검장)은 지난 17일 윤씨를 전격 체포한 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공갈 등 3개 혐의를 적용해 바로 다음 날 윤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윤씨 측은 영장청구서에 적시된 대다수 혐의가 수사의 본류인 김 전 차관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별건 수사'라는 주장을 폈습니다. 윤씨 변호인은 영장실질심사 직전 기자들과 만나 "(검찰이) 개인 사건으로 윤씨 신병을 확보해놓고 본건 자백을 받아내려 하는 것"이라며 "무리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윤씨는 "2013년 이후 재기해 열심히 살려 했는데, 검찰이 과거 잘못해놓고 이제 와서 다시 (자신을) 조사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억울하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공소시효 만료 문제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검찰로선 이번 영장기각으로 김 전 차관의 뇌물수수·성범죄 혐의를 규명하는 데 난관을 겪을 것으로 관측됩니다.
윤씨는 체포된 상태에서 받은 검찰 조사에서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하고, 묵비권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수사단은 윤씨가 구속된다면 태도를 바꿔 김 전 차관을 둘러싼 의혹을 풀어내는 데 여러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는 데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뇌물수수 수사 권고 자체가 윤씨의 진술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윤씨가 김 전 차관에게 2005∼2012년 수천만원의 뇌물을 건넨 정황이 있다며 지난달 25일 수사를 권고했습니다. 윤씨는 과거사 진상조사단의 조사를 다섯 차례 받으며 뇌물 관련 진술을 내놓았으나 번복한 데다, 수사권 없는 조사단에서 한 진술을 법정에서 증거로 활용하기가 어렵습니다.
수사단은 관계자는 "구속영장 기각 사유를 분석하고 그에 대한 보완 수사 후 영장 재청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추가 수사를 통해 윤씨와 김 전 차관 사이 연결고리를 추가로 규명한 뒤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윤씨가 뇌물 의혹을 뒷받침할만한 진술을 내놓더라도 신빙성을 자신하기 어려운 만큼 수사단은 계좌추적 등 진술에 의존하지 않고도 김 전 차관의 범죄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확보하는 데 수사력을 쏟을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은 특히 '별장 성접대' 사건이 터지기 직전인 2012∼2013년 사이 윤씨 행적을 집중적으로 추적해왔습니다. 뇌물수수 액수가 3천만원이 넘을 경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따른 공소시효가 10년이 되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윤씨가 2012년 한 사업가의 횡령 사건을 무마해준다는 명목으로 5억원을 요구한 사건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윤씨가 당시 광주고검장으로 재직 중이던 김 전 차관에게 연락을 시도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해왔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