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반도체 슈퍼호황에도 반도체설계 중국에 밀려 적자 '빨간불'
입력 2019-04-17 10:11  | 수정 2019-04-24 11:05
지난해 반도체 시장의 슈퍼호황에도 국내 팹리스(fabless),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상장사의 절반 이상이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 팹리스에 밀려, 한국 중소업체들이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오늘(17일) 업계와 기업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팹리스 상장사 24개 가운데 지난해 영업손실을 낸 기업은 13곳으로 전체의 50%가 넘습니다.


지난 2016년만 해도 이들 24개 기업 가운데 7개 업체만 적자였는데 2년새 2배 가까이 늘어난 겁니다.


팹리스 매출액 상위 1∼7위 기업이 모두 흑자를 냈을 뿐 8위 이후로는 적자를 면한 기업이 4곳뿐이었습니다.

이들 기업 가운데 아나패스, 지스마트글로벌, 골드퍼시픽은 2017년 흑자를 기록했다가 지난해 적자로 전환됐습니다.



또 반도체 호황기였던 지난해 이들 팹리스 상장사의 매출 총액은 1조 8천 959억원으로 전년보다 2.0% 늘어나는데 그쳤습니다.

여기에 팹리스 매출 1위인 LG 그룹 계열사 실리콘웍스가 24개 기업 전체 매출액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사실상 중하위권 기업은 성장이 정체돼 있는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비(非)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중요한 한 축인 팹리스는 위축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공장(Fab)이 없는 팹리스는 중앙처리장치(CPU)나 모바일프로세서(AP), 통신모뎀·이미지센서 같은 시스템 반도체(비메모리) 칩의 설계만 맡고, 양산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 위탁하는 업체를 말합니다.

이와 관련해 국내 파운드리 업체들은 국내 팹리스를 고객사로 선택할 유인이 부족하다고 지적합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팹리스 업체는 200여개에 불과해 기술력과 가격 측면에서 경쟁력이 약하다"며, "반면 중국에는 1천 300여개의 업체가 포진해 있어 경쟁을 통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내 파운드리 업체들이 중국 쪽에 눈을 돌리면서 국내 팹리스가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팹리스 시장에서 미국이 68%로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고 대만은 16%, 중국은 13%를 기록했습니다. 한국은 1% 미만의 미미한 점유율을 보이고 있을 뿐입니다.

특히 중국이 빠르게 비메모리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며 미국과 대만을 본격적으로 추격하고 있다는게 업계의 분석입니다.

한국무역협회는 중국 팹리스의 이러한 약진에는 풍부한 인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습니다.

무협이 최근 발간한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기회 및 위협요인'에 따르면 메모리와 파운드리 등 제조 산업은 대규모 설비투자와 축적된 노하우가 필요하지만, 팹리스는 설계자의 역량이 중요해 짧은 시간 안에 성과를 내기에 유리합니다.



실제 중국 팹리스 캄브리콘(Cambricon)은 고성능 저전력 인공지능(AI) 칩을 개발하는 데 성공해 기업 가치 '1조원 이상'의 유니콘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여기에 중국 팹리스 업체들은 중국 파운드리 업체와의 거래를 등에 업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IHS마킷에 따르면 중국 팹리스 시장에서 중국과 대만 파운드리 업체로부터 수주한 매출 비중은 각각 34%, 58%에 달했습니다.

반면 국내 파운드리 업체들은 주로 미국 퀄컴이나 IBM 등의 수주를 받아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어, 국내 팹리스 업체의 수혜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최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협력을 바탕에 둔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강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협회가 제안한 방안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DB하이텍 등 파운드리 업체가 1장의 웨이퍼에 여러 종류의 반도체 제품을 생산하는 '멀티 프로젝트 웨이퍼(MPW)'를 통해 팹리스 업체들이 반도체를 설계 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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