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계 살림이 더 팍팍해지면서 가계의 여윳돈이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기업도 수익 악화로 전년에 비해 2배가량 돈을 더 빌렸다. 반면 세수 호조로 정부의 여윳돈은 크게 늘었는데, 사상 처음으로 정부의 곳간이 가계보다 더 두둑해졌다.
한국은행이 10일 발표한 '2018년 중 자금순환(잠정)'을 보면, 지난해 가계와 비영리단체의 순자금 운용 규모는 49조3000억원이었다. 순자금 운용은 가계가 예금, 채권, 보험, 연금 준비금으로 굴린 돈(자금 운용)에서 금융기관 대출금(자금 조달)을 뺀 금액으로, 여유 자금을 뜻한다. 가계의 순자금 운용규모는 2009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저수준이다.
이인규 한국은행 경제통계국 팀장은 "민간소비 완만한 증가세로 순자금 운용 규모가 전년보다 소폭 축소했다"며 "전년과 비교하면 지난해에는 주택 수요 영향이 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씀씀이는 커졌지만, 경기가 좋지 않아 소득이 따라 늘지 않아 가계의 여유자금은 사상 최저수준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민간 최종소비지출은 2017년 832조2000억원에서 지난해 867조원으로 4.2% 늘었다. 경상 성장률(3.0%)보다 컸다.
기업 살림도 더 어려워졌다. 금융회사를 제외한 비금융법인의 지난해 순자금조달 규모는 39조8000억원으로 전년(14조4000억원)보다 2배 넘게 증가했다. 순자금조달 규모가 확대됐다는 건 기업들이 외부에서 자금을 많이 빌렸다는 말이다. 설비투자가 늘어나면 순자금 조달이 확대되기도 하지만 지난해에는 사정이 달랐다. 이인규 팀장은 "국제 유가 상승를 비롯한 교역조건 악화와 기업 수익성 저하로 기업이 전년보다 더 많은 돈을 빌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말 상장기업의 당기순이익은 79조2000억원으로 전년(83조9000억원)에 비해 줄어들었다.
어려워진 가계와 기업 살림과 달리 정부의 곳간은 더 두둑해졌다. 정부의 순자금 운용 규모는 55조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가계보다 정부의 곳간이 더 풍족한건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처음이다. 지난해 소득세, 법인세수가 나란히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등 세수 호조 덕분이었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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