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사대란 이제 시작이다 (下) ◆
강화된 회계감사를 통해 재무제표가 기업의 존폐를 가르는 시대로의 진입을 앞당기고 있다. 감사인의 책임과 권한을 강화한 '신외부감사법'(신외감법)이 본격 도입되면서 기업들은 수익과 비용의 경계선에 있는 항목들에 대해 과거보다 한층 보수적인 잣대와 기준을 감사인에게 제시해야 하며 현금흐름상 안전하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 현금성 자산 증가에 대한 의무까지 안게 됐다. 단기적으로 기업들의 회계 부담이 커졌지만 이를 적극 반영한 상장사들은 회계 투명성이 높아져 중장기적으로 이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9일 한국거래소와 에프앤가이드 등 관련 업계에 따르면 감사의견으로 한정, 감사의견 거절 등 비적정 감사의견을 받아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곳은 웅진에너지 등 33곳이다. 이 중 8일까지 감사의견 적정을 받아 거래소에 제출한 청담러닝, 경창산업, 동양물산, 차바이오텍, MP그룹을 빼면 28곳이 상폐 위기에 몰린 셈이다. 작년에는 이 같은 비적정 감사의견으로 상폐된 사례가 코스닥 10곳을 포함해 전체 11곳이었다.
거래소 관계자는 "신외감법 적용으로 회계법인의 감사가 엄격해진 데다가 최근 경기 악화로 일부 상장사의 실적이 악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이 같은 '감사대란'이 내년에는 더욱 확대될 수 있다며 최근 일부 상장사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웅진에너지는 작년 감사보고서에 대해 의견 거절을 받아 올해 상폐 위기에 몰려 있다. 감사인인 한영회계법인은 "누적 결손금 3642억원에, 유동부채가 유동자산을 1226억원 초과하고 있다"며 계속 기업으로의 존속 능력에 대한 불확실성을 지적했다.
웅진에너지는 태양광 전지용 잉곳 및 웨이퍼를 생산하는 업체다. 최대 태양광 시장인 중국 정부가 보조금을 축소하면서 실적 부진이 이어진 가운데 모기업인 웅진그룹으로부터의 지원도 약화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작년 보고서에 대해 회사 측과 감사인 의견이 유형자산 손상차손 반영에서 엇갈렸다. 결국 회계감사 결과에 따라 유형자산 손상차손이 420억원이나 추가 반영됐다.
유형자산 손상차손은 시장가치의 급격한 하락 등으로 유형자산 가치가 장부 가격보다 크게 낮아질 가능성이 있는 경우 이를 재무제표상 손실로 반영하는 것이다. 영업 외 손실이 추가로 잡히면서 2017년 14억원 흑자였던 순이익은 작년에 1118억원의 대규모 적자로 돌아섰다.
업계 관계자는 "신외감법은 과거 회계 방식과의 단절을 뜻한다"며 "상장사 입장에서 회계 리스크의 본질은 업황이 안 좋을 때 실적 악화가 가중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웅진에너지는 특히 감사의견 거절이 회계 처리에 그치지 않았다. 채권단의 기한이익상실(EOD) 사유가 발동해 차입금 상환 압박까지 예고됐다. 기한이익상실은 금융기관이 채무자 신용위험이 높아질 경우 대출금을 만기 전에 회수하는 것을 뜻한다.
웅진에너지가 발행한 채권은 1123억원 규모로 대부분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이다. 이 중 753억원에 달하는 CB에 대해 EOD 사유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웅진에너지는 작년 말 기준 현금성 자산이 74억원에 불과하다. 신용평가사들은 조만간 웅진에너지의 신용등급(B+)을 하향 조정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신용등급이 나빠지면 자금 조달이 더 어려워지고 비용은 급증한다. 작년 감사보고서에 대해 한정 의견을 받은 아시아나항공도 시장에 적잖은 파장을 줬다. 이후 적정 의견을 받아 상장폐지 위기는 벗어났지만 재무제표에 대한 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은 "운용리스 항공기의 정비 의무 관련 충당금, 마일리지 이연수익의 인식과 측정, 에어부산의 연결 대상 포함 여부 등에 대해 적합한 감사 증거를 입수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 상장사의 경우 항공기를 빌려 쓰는 운용리스 비용 처리 문제에서 감사인과 의견 차이를 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의 충당금 등 비용 인식이 감사인의 눈높이에 미달했던 것"이라고 전했다. 아시아나항공의 작년 연결 기준 실적은 재무제표 정정 전 영업이익 887억원에서 정정 후 282억원으로, 당기순손실은 1050억원에서 1979억원으로 적자폭이 확대됐다. 정정 후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2017년과 비교해 각각 88.5% 감소와 대규모 적자 전환을 기록한 것이다. 부채비율 역시 작년 말 기준 649.29%까지 치솟았다. 이에 따라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BBB-)도 하향 검토 대상에 올랐다.
웅진에너지와 아시아나항공 모두 코스피 상장사이지만 향후 감사대란 영향은 코스닥 업체에서 주로 나타날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 올해 감사의견으로 인해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상장사 33곳 중 28곳(84.8%)이 코스닥 업체에서 나온 데다 재무제표도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말 기준 코스닥 1331곳의 단기차입금은 32조원에 달하지만 현금성 자산의 합은 27조5000억원에 그치고 있다.
[문일호 기자 / 조희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강화된 회계감사를 통해 재무제표가 기업의 존폐를 가르는 시대로의 진입을 앞당기고 있다. 감사인의 책임과 권한을 강화한 '신외부감사법'(신외감법)이 본격 도입되면서 기업들은 수익과 비용의 경계선에 있는 항목들에 대해 과거보다 한층 보수적인 잣대와 기준을 감사인에게 제시해야 하며 현금흐름상 안전하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 현금성 자산 증가에 대한 의무까지 안게 됐다. 단기적으로 기업들의 회계 부담이 커졌지만 이를 적극 반영한 상장사들은 회계 투명성이 높아져 중장기적으로 이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9일 한국거래소와 에프앤가이드 등 관련 업계에 따르면 감사의견으로 한정, 감사의견 거절 등 비적정 감사의견을 받아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곳은 웅진에너지 등 33곳이다. 이 중 8일까지 감사의견 적정을 받아 거래소에 제출한 청담러닝, 경창산업, 동양물산, 차바이오텍, MP그룹을 빼면 28곳이 상폐 위기에 몰린 셈이다. 작년에는 이 같은 비적정 감사의견으로 상폐된 사례가 코스닥 10곳을 포함해 전체 11곳이었다.
거래소 관계자는 "신외감법 적용으로 회계법인의 감사가 엄격해진 데다가 최근 경기 악화로 일부 상장사의 실적이 악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이 같은 '감사대란'이 내년에는 더욱 확대될 수 있다며 최근 일부 상장사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웅진에너지는 작년 감사보고서에 대해 의견 거절을 받아 올해 상폐 위기에 몰려 있다. 감사인인 한영회계법인은 "누적 결손금 3642억원에, 유동부채가 유동자산을 1226억원 초과하고 있다"며 계속 기업으로의 존속 능력에 대한 불확실성을 지적했다.
웅진에너지는 태양광 전지용 잉곳 및 웨이퍼를 생산하는 업체다. 최대 태양광 시장인 중국 정부가 보조금을 축소하면서 실적 부진이 이어진 가운데 모기업인 웅진그룹으로부터의 지원도 약화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작년 보고서에 대해 회사 측과 감사인 의견이 유형자산 손상차손 반영에서 엇갈렸다. 결국 회계감사 결과에 따라 유형자산 손상차손이 420억원이나 추가 반영됐다.
유형자산 손상차손은 시장가치의 급격한 하락 등으로 유형자산 가치가 장부 가격보다 크게 낮아질 가능성이 있는 경우 이를 재무제표상 손실로 반영하는 것이다. 영업 외 손실이 추가로 잡히면서 2017년 14억원 흑자였던 순이익은 작년에 1118억원의 대규모 적자로 돌아섰다.
업계 관계자는 "신외감법은 과거 회계 방식과의 단절을 뜻한다"며 "상장사 입장에서 회계 리스크의 본질은 업황이 안 좋을 때 실적 악화가 가중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웅진에너지는 특히 감사의견 거절이 회계 처리에 그치지 않았다. 채권단의 기한이익상실(EOD) 사유가 발동해 차입금 상환 압박까지 예고됐다. 기한이익상실은 금융기관이 채무자 신용위험이 높아질 경우 대출금을 만기 전에 회수하는 것을 뜻한다.
웅진에너지가 발행한 채권은 1123억원 규모로 대부분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이다. 이 중 753억원에 달하는 CB에 대해 EOD 사유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웅진에너지는 작년 말 기준 현금성 자산이 74억원에 불과하다. 신용평가사들은 조만간 웅진에너지의 신용등급(B+)을 하향 조정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신용등급이 나빠지면 자금 조달이 더 어려워지고 비용은 급증한다. 작년 감사보고서에 대해 한정 의견을 받은 아시아나항공도 시장에 적잖은 파장을 줬다. 이후 적정 의견을 받아 상장폐지 위기는 벗어났지만 재무제표에 대한 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은 "운용리스 항공기의 정비 의무 관련 충당금, 마일리지 이연수익의 인식과 측정, 에어부산의 연결 대상 포함 여부 등에 대해 적합한 감사 증거를 입수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 상장사의 경우 항공기를 빌려 쓰는 운용리스 비용 처리 문제에서 감사인과 의견 차이를 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의 충당금 등 비용 인식이 감사인의 눈높이에 미달했던 것"이라고 전했다. 아시아나항공의 작년 연결 기준 실적은 재무제표 정정 전 영업이익 887억원에서 정정 후 282억원으로, 당기순손실은 1050억원에서 1979억원으로 적자폭이 확대됐다. 정정 후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2017년과 비교해 각각 88.5% 감소와 대규모 적자 전환을 기록한 것이다. 부채비율 역시 작년 말 기준 649.29%까지 치솟았다. 이에 따라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BBB-)도 하향 검토 대상에 올랐다.
웅진에너지와 아시아나항공 모두 코스피 상장사이지만 향후 감사대란 영향은 코스닥 업체에서 주로 나타날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 올해 감사의견으로 인해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상장사 33곳 중 28곳(84.8%)이 코스닥 업체에서 나온 데다 재무제표도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말 기준 코스닥 1331곳의 단기차입금은 32조원에 달하지만 현금성 자산의 합은 27조5000억원에 그치고 있다.
[문일호 기자 / 조희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