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강풍은 재해 아니라고?"…'산불 사망자' 판단 엇갈려 논란
입력 2019-04-09 14:44  | 수정 2019-04-16 15:05

"산불 피하려다 당한 참변인데 한 분은 피해 입증을 위해 부검까지 거쳐야 했고, 또 다른 분은 아예 재해 피해자 집계에서 제외되다니 이게 말이 되나요."

화마가 고성·속초 등 동해안을 집어삼킨 지난 4일 밤.

강한 바람을 타고 바닷가 쪽으로 산불이 급속확산되자 인근 주민들에게 긴급 재난 문자메시지가 전송됐습니다.

강풍을 타고 확산하는 산불의 기세는 거셌고 걷잡을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당시 오후 6시 10분 기준 최대 순간풍속은 미시령 35.6㎧, 양양공항 29.5㎧, 강릉 연곡 25.2㎧, 속초 설악동 23.4㎧, 고성 현내 22.6㎧ 등이었습니다.


속초에 사는 59살의 김 모 씨는 불길이 확산 중이던 고성군 토성면 용촌리에 사는 누나의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오후 8시쯤 연기가 확산하는 상황에서 누나를 데리고 나오다 연기를 들이마신 김 씨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습니다. 병원으로 옮겨진 김 씨는 끝내 숨졌습니다.

숨진 김 씨에 의해 구조된 누나는 동생의 소식을 듣고 하염없는 눈물만 흘렸습니다.

김 씨의 누나는 경찰에서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혼자 사는 나를 데리러 동생이 왔고, 함께 집을 나서는데 연기를 마시고 갑자기 쓰러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같은 날 비슷한 시각. 산불이 난 고성군 토성면에서 20㎞가량 떨어진 죽왕면 삼포리에 사는 71살 박 모 씨도 산불대피 재난 문자메시지와 대피를 준비하라는 마을 이장의 안내방송을 들었습니다.

박씨는 속초에 사는 자녀들로부터 "강풍이 부니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94살의 친정 노모를 모시고 사는 박 씨는 대피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결국 박 씨는 오후 9시 45분쯤 대피 여부를 상의하기 위해 이장을 만나러 마을회관으로 가던 중 강풍에 날아온 함석지붕과 서까래에 깔려 숨졌다는 게 유족들의 주장입니다.

유족들은 "강풍에 날아든 함석지붕 등이 어머니를 덮치면서 전봇대에 부착된 마을 안길 삼거리 반사경과 이정표를 떨어뜨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강원산불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5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산불로 인한 사망자가 김 씨와 박 씨 등 2명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인명 피해 집계과정에서 박 씨는 산불로 인한 직접 피해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망자에서 제외됐습니다.

이에 박 씨의 유족들은 "강풍이 불어 산불이 확산했고, 재난 문자메시지와 대피 방송을 듣고 집을 나섰다가 강풍으로 참변을 당했는데 산불 재해사망자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또 "강풍 사고는 천재지변이라 재해로 집계하지 않는다는 말이 너무도 원통하다"며 "이번 참변으로 어머니만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피해자"라고 토로했습니다.

산불 사망자로 집계된 김 씨의 유족도 김 씨의 사인 규명을 위해 어제(8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거친 뒤에야 장례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김 씨의 국과수 부검 결과도 빠르면 일주일 뒤, 늦으면 2주가량 지나야 알 수 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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