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손쉽게 '마약' 구매…한국, '마약 청정국'은 옛말
입력 2019-04-09 14:41  | 수정 2019-04-16 15:05

대기업·재벌가 3세가 연루된 마약 사범 적발에 이어 유명 방송인 하일(미국명 로버트 할리) 씨가 마약 투약 혐의로 어제(8일) 체포되는 일까지 벌어지면서 우리 사회에 충격을 더하고 있습니다.

연예인이나 부유층 자제의 마약 투약 사건은 과거에도 드물지 않게 발생해왔지만, 버닝썬 사건 이후 마약류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진 상황에서 유명인들의 마약 사범이 잇따라 터지면서 국민이 체감하는 심각성이 더욱 큰 상황입니다.

그러나 유명인의 마약 투약 사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한 유통망 발달로 평범한 일반인으로까지 마약 유통이 확대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마약류 사범은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대검찰청 통계를 보면 마약류 범죄(대마·마약·향정신성의약품)로 단속된 사범은 2013년 9천764명에서 2018년 1만2천613명으로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2017년 1만4천123명과 비교하면 지난해 10%가량 감소하긴 했지만 마약 사범만 두고 보면 2017년 1천475명, 2018년 1천467명으로 차이가 없었습니다.


최성락 식품의약품안전처 차장은 지난달 13일 국회에 나와 "(한국이) '마약청정국'의 지위는 잃었다고 본다. 광범위하게 유포된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 계층이 마약류를 접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단순히 통계로 보이는 증가 추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일반인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마약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유통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약류 광고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대검이 발간한 마약류 범죄백서를 보면 2017년 국내에서 마약류 판매 광고를 하다가 적발된 사범은 총 55명이었습니다.

이들의 광고 수단은 유튜브, 채팅앱, 인터넷 카페, 검색광고, 딥웹(숨겨진 인터넷 사이트), 트위터 등 매체 종류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마약류 광고행위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지만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은밀한 용어로 유통을 하면 수사기관의 추적도 쉽지 않다고 한습니다.

2017년 9월에는 부산 주택가의 한 상가건물에서 전문적인 대마재배시설을 갖추고 다량의 대마를 재배한 뒤 딥웹에서 비트코인 결제로 대마를 판매한 일당 4명이 구속기소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고교 동창생 사이로 마약조직과 연관도 없이 회사에 다니거나 취업준비를 하는 등 평범한 일상인으로 지내면서 '부업'으로 대마를 재배·판매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을 줬습니다.

수사기관의 감시와 추적이 어려운 딥웹의 비밀 웹사이트에서 대마를 구해 기른 뒤 다시 비밀 웹사이트에 판매 글을 올리고, 추적이 어려운 암호화폐로 대금을 받는 수법을 썼습니다.

인터넷에서 필로폰 제조방법을 습득한 뒤 집이나 작업에 제조시설을 갖춰놓고 필로폰을 만들다 적발된 사례도 최근 몇 년 새 여러 건 있었습니다.

일부 해외 국가에서 대마류가 합법화하면서 국제우편 등을 통해 밀반입을 시도하는 사례도 늘어난 것으로 수사당국은 보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대마 등 마약류를 접해 본 유학생이나 젊은 층이 클럽 파티용 등으로 밀반입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밀반입 대상 마약류로는 대마오일, 대마쿠키, 대마카트리지, 대마초콜릿 등 대마류부터 양귀비 종자, 대마종자 등 마약류 제조가 가능한 종자까지 포함되는 것으로 수사당국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대검은 마약류 범죄백서에서 최근 몇 년간 마약류 사범 증가 원인에 대해 "인터넷·SNS 등을 이용하여 기존 마약 전과가 있는 마약류 사범뿐만 아니라 마약을 접한 경험이 없는 일반인들도 국내외 마약류 공급자들과 쉽게 연락을 주고받으며 마약류를 소비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습니다.

유명인들의 마약 사범으로 사회의 경각심이 커지게 된 점을 기회로 삼아 일상 속에 침투해 온 마약을 근절하기 위해 다시금 '마약과의 전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부는 2000년대 초반 마약류 사범이 증가세를 보이자 강력한 단속을 통해 밀수조직과 공급선을 적발한 바 있습니다. 연간 1만명을 웃돌던 마약류 사범은 단속 이후인 2003∼2006년 연간 7천명선으로 감소했습니다.

전경수 한국마약범죄학회 회장은 "한국이 마약 청정국이라는 주장은 검거 인원을 보면 이미 설득력이 없는 상황"이라며 "청정국이라는 용어는 정책적 면피를 위한 말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전 회장은 "국내 유통되는 마약의 90%가 치명적 화학물질로 만든 필로폰임을 고려하면 마약은 국민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며 "청와대와 국회가 나서 마약 대응을 위한 콘트롤타워 기구를 만들고, 단속부터 중독자 재활치료, 수감 중인 마약 범죄자에 대한 교정정책 개선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총괄하게 하는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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