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담당 업무가 바뀌자 중압감을 느껴 회사에 사직 의사를 밝혔다가 철회가 불가능해지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 직원에게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오늘(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10부(한창훈 부장판사)는 A 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와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원고 승소로 판결했습니다.
10년차 사원이던 A 씨는 2015년 회사가 자신에게 갑자기 해외 발전소 관련 입찰 업무를 맡기자 사직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A 씨는 회사가 맡긴 업무가 생소한 데다 실패 위험성도 높아 자신이 문책받을 수 있다는 중압감에 다른 이유를 대고 회사에 사의를 표했습니다.
우울증 진단까지 받은 그는 회사에 사직 의사를 철회하고 휴직을 요청했으나 회사는 이미 A 씨의 후임자를 인선했다는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결국 퇴사한 그는 약 한 달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유족은 A 씨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 등을 청구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이 거절하자 소송을 냈습니다.
1·2심 재판부는 모두 유족의 주장이 옳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A 씨가 전직 처분 이후 의사와 유족에게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주로 호소했고, 그 스트레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경력이나 해당 업무의 방식에 대한 평가 등에 기초한 것"이라며 "A 씨의 우울증이 전직 처분으로 발병했거나 더 깊어졌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A 씨의 업무를 바꾸는 과정에서 충분한 조율이 이뤄지지 않은 데다 실무자인 A 씨로선 사업 중단을 건의하거나 실패했을 때 책임소재를 명확히 해 두는 등의 조치를 하기 어려워 퇴사만이 유일한 방법으로 생각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로 퇴사하게 돼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으리라는 것이 명백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법률적으로도 A 씨가 표명한 사직 의사는 실제로 계약의 합의 해지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철회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며, 철회를 받아들이지 않은 회사에 대한 원망과 자책 등 괴로움이 컸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근로복지공단 측은 A 씨가 다른 이유를 들어 사직 의사를 표명한 만큼 회사가 '전직 스트레스'가 이유라는 것을 알 수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A 씨가 10년 이상 근무하면서 특별한 잘못을 하지 않았던 만큼 충분히 다른 부서나 업무로 전환 배치할 수 있었다고 보인다"며 "그런데도 이를 거절한 것은 A 씨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회사가 알았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고 밝혔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