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6000 안 계십니까? 1억5500, 1억5500, 1억5500, 탕! 낙찰!"
지난 5일 오후 7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열린 '맥캘란 72년 제네시스 디캔터' 경매 현장. 한국에서 진행된 최초의 위스키 공식경매로 관심을 모았던 이날 서울옥션의 최종 낙찰가는 1억5500만원으로 기록됐다.
맥캘란 72년 제네시스 디캔터(700ml, 42도)는 지난해 5월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에 증설한 증류소를 기념하기 위해 기획된 싱글몰트 위스키로 높은 희소성을 자랑한다. 전세계 600병만 한정 제작됐고 한국에는 단 2병만 들어 왔다. 한 병은 국내 호텔에서 판매될 예정이고, 다른 한 병이 이날 서울옥션 경매에 나왔다. 경매에는 위스키 애호가, 투자자, 콜렉터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한국에서 열린 첫 위스키 경매여서 차분히 진행될 것이란 예상은 처음부터 깨졌다. 경매에서는 빠른 진행을 위해 '만원'이란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진행자가 최초 경매가 "7000"을 외치자 플로어 중간에 앉아있던 국내 유명 위스키바의 대표가 자신의 번호판을 번쩍 들어 매수의사를 밝히면서 분위기가 달궈지기 시작했다.
경매가는 순식간에 1억원을 돌파했고 진행자가 "1억3000"을 외치자 플로어 곳곳에서 탄식이 터졌다. 당초 위스키 콜랙터들은 1억2000~1억3000만원 사이에서 낙찰가가 형성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맥캘란 72년 제네시스 디캔터. <사진제공=에드링턴코리아>
맥캘란 72년 제네시스 디캔터. <사진제공=에드링턴코리아>
제네시스 디캔터는 프랑스 크리스털 공예업체 '라리끄'가 원액을 담는 병인 '디캔터'를 제작했다. 제네시스 디캔터는 2차세계대전 직후 오크통에 담겨 72년간 숙성한 맥캘란의 역대 최고연산 제품이다. 위스키는 원액을 오크통에 담아 놓으면 숙성 과정에 증발한다. 한국 기후에선 10년만 넘어도 원액이 거의 남지 않는다. 습도가 높은 스코트랜드에선 증발량이 연간 2%정도다. 스코틀랜드에선 제네시스 디캔터를 '천사를 위해 남긴 몇 방울의 술'이란 의미로 '천사의 몫(Angel's share)'이라고 부른다.맥캘란 관계자는 "72년 동안 위스키가 좋은 상태로 보존됐고 알코올 도수도 유지되는 것은 미스터리에 가깝다"고 말했다.
낙찰자는 강남 선정릉역 인근의 위스키숍 '위스키 라이브러리'의 주연태 대표(39)다. 플로어 맨 앞줄에 앉아 자신이 번호판 '169번'을 들어 올려 '천사의 몫'을 가져갔다.
주 대표는 "당장 되팔거나 마실 생각은 없고 5~6년 정도 업소에 진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 대표와 경합을 벌이다 마지막 순간 포기한 또 다른 남성은 끝내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 남성은 "가격이 계속 올라갈 분위기여서 1억5000만원에서 멈췄다"고 말했다.
전세계 슈퍼리치들 사이에서 '희귀 위스키'는 새로운 럭셔리 투자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영국 부동산정보 업체인 나이트프랭크가 공개한 '2019 부(富) 보고서'에 따르면, 희귀 위스키는 자동차와 미술품을 제치고 투자 수익률 1위를 차지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희귀 위스키의 가치는 지난 10년 동안 582%가 상승했다. 뒤를 이어 고급 자동차(258%), 우표(189%), 미술품(158%), 와인(147%) 순으로 조사됐다.
세계 위스키 경매사상 최고가는 아일랜드 예술가 마이클 딜런이 핸드 페인팅한 '맥캘란 1926'이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된 '맥캘란 발레리오 아다미 1926'는 120만파운드(약 17억7800만원)에 낙찰되며 위스키 경매의 새로운 역사를 장식했다.
맥캘란을 국내 유통하는 에드링턴코리아의 노동규 대표는 "제네시스 디캔터 경매는 국내 최초로 공식 진행된 싱글몰트 경매로 그 시작이 맥캘란이라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싱글몰트 위스키가 단순한 술이 아닌 장인정신으로 빚어낸 하나의 창조물로 소비자들에게 인식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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