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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드러머 걸’ 박찬욱 감독, 진부함도 새로움으로 [M+김노을의 디렉토리]
입력 2019-03-29 12:01 
박찬욱 감독 사진=DB
연출자의 작품·연출관은 창작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영화, 드라마, 예능 모두 마찬가지죠. 알아두면 이해와 선택에 도움이 되는 연출자의 작품 세계. 자, 지금부터 ‘디렉토리가 힌트를 드릴게요. <편집자주>

[MBN스타 김노을 기자]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유독 재미있게 하는 사람이 있다. 박찬욱 감독은 재미있는 이야기꾼이다. 예측되지 않는 서사로 통쾌한 배신감을 안기던 그가 이번에는 TV 미니시리즈로 돌아왔다.

박찬욱 감독은 지난 1992년 영화 ‘달은... 해가 꾸는 꿈으로 입봉했다. 이후 몇 편의 영화를 찍었거나 각본을 썼지만 별다른 빛을 보진 못했다. 그러던 중 2000년도 개봉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국내외 유수 영화제는 물론 평단, 관객 모두에게 인정받았고 20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그렇게 자신의 가능성을 입증한 박찬욱 감독의 다음 선택은 ‘복수였다.

영화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포스터 사진=CJ엔터테인먼트, 쇼이스트

◇ 개성 있는 복수의 탄생, 복수 3부작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은 ‘복수는 나의 것(2002년)을 시작으로 ‘올드보이(2003)를 거쳐 ‘친절한 금자씨(2005)에서 끝난다. 진부하고 상투적인 복수라는 소재는 이 세 편의 영화와 만나 비로소 개성을 찾았다.

‘복수는 나의 것의 복수는 무심코 벌어진 일로부터 시작된다.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류(신하균 분)와 운동권 출신 영미(배두나 분)가 계획한 일은 전혀 상상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딸을 잃은 동진(송강호 분)의 분노는 복수가 되고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모를 파국으로 치닫는다.

장도리 씬으로 유명한 ‘올드보이와 너나 잘 하세요”라는 대사로 대변되는 ‘친절한 금자씨의 복수도 그렇다. 무심코 뱉은 한 마디, 무심코 받아들인 제안으로부터 일이 꼬여버리고 애먼 사람이 죽어나간다. 타인 혹은 사건을 가볍게 여기고 경솔하게 판단한 결과다. 그리고 결국 죄를 지은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처단당한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죄를 짓는다. 잘못이라는 걸 알든 모르든 누구나 실수를 한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세계에서 중요한 건 속죄다. 속죄를 하는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이 뒤섞인 그곳에는 여러 의미의 눈물과 분노가 섞여있다.

영화 ‘박쥐 ‘스토커 ‘아가씨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스틸컷 사진=CJ엔터테인먼트, 폭스

◇ 박찬욱표 미장센과 여성서사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하나부터 열까지 대담하다. 서사는 물론이고 이야기를 품은 미장센은 더없이 강렬하고 그로테스크하다.

그의 영화 속 섬뜩하고 불편한 상황은 아름다운 색채와 만나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뻔한 공간은 삐딱한 구도를 통해 낯선 곳으로 탈바꿈하고, 단순한 미적 기능을 넘어 생각의 여지를 남긴다. 이렇게 보편적인 아름다움과 추함이 한데 모인 미장센은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후에도 잊히지 않는 잔상이 된다.

감각적인 미장센과 더불어 박찬욱 감독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여성서사다. ‘친절한 금자씨 ‘박쥐 ‘아가씨 ‘스토커 등에서 강렬하고 독자적인 여성 캐릭터를 내세웠다.

박찬욱 감독 영화의 여성들은 자각하고 행동한다. 타인에게 영향을 받지 않으며 자의에 의해 결단을 내린다. 여러 시대에 걸쳐 수동성으로 대변되어온 여성이 주체적으로 빛나는 순간이 차고 넘친다. 몇몇 작품은 성장사 형식을 취했다. 억압받던 인물은 스스로 깨닫고 변화해 장벽을 부수고 더 큰 세계로 나아간다. 그곳에는 감상적인 슬픔도 모성애도 없다.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 스틸컷 사진=왓챠

◇ 첫 TV 미니시리즈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

박찬욱 감독의 첫 미니시리즈 연출작 ‘리틀 드러머 걸은 1979년 이스라엘 정보국의 비밀 작전에 연루되어 스파이가 된 배우 찰리(플로렌스 퓨 분)와 그를 둘러싼 비밀 요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첩보 스릴러다.

스파이 소설의 거장 존 르 카레의 오랜 팬인 박찬욱 감독은 동명 소설을 원작 삼았다. 첩보 스릴러와 로맨스가 공존하는 매력에 이끌렸다는 그는 각색 과정에서 이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주인공인 찰리는 리얼과 픽션을 오간다. 그는 스파이가 되기 전부터 스스로 만든 허구 속에서 살아왔다. 찰리가 직업적 특성상 모든 것을 유연하게 연기할 수 있으며 언제든 정체성을 바꿀 수 있다는 건 이 드라마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더불어, 한 인물이 스스로 위험한 세계에 발을 내딛고 온갖 장애물을 극복하며 점차 성숙해진다는 이야기 자체도 몰입도를 높인다.

박찬욱 감독의 색깔로 변주된 1979년의 이야기 ‘리틀 드러머 걸에는 빛나는 시도가 고스란히 담겼다. 김노을 기자 sunset@mkcul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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