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자진해서 그룹 경영에서 물러난다. 전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 대표이사직에서 내려온 데 이어 박 회장 역시 아시아나항공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으면서 사실상 국내 양대 항공사 총수가 모두 자리를 떠나게 됐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8일 박 회장이 그룹 회장직은 물론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 대표이사와 사내이사에서 모두 물러난다고 밝혔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 감사보고서가 한 때 '한정' 의견을 받은 데 따른 금융시장 혼란에 대해 책임을 지기 위한 것이란 게 그룹 측의 설명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이원태 부회장을 중심으로 비상경영체제를 운영하면서, 외부인사 영입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비상위에는 계열사 사장들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으며, 외부인사 영입 시 그룹은 전문경영인 체제에 들어가게 된다.
전일 열린 대한항공 주총에선 조 회장이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하면서 대한항공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앞서 대한항공과 한진칼, (주)한진 등 주력계열사 3곳을 제외하고 진에어 등 4개 계열사 등기임원에서 물러나겠다며 주력계열사에 집중하겠단 의지를 보였지만, 대한항공 2대 주주인 국민연금 등의 반대로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 안건이 통과되지 못했다.
다만, 박 회장과 달리 조 회장은 대한항공 보유 주식과 미등기 회장 등으로 경영권을 이어갈 계획이다.
오는 29일에는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이자 대한항공의 모회사인 한진칼을 비롯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주총이 나란히 열린다. 금호산업 주총에 박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이 안건에 올라있었지만, 회사의 유동성 위기로 주주 반발이 심하자 결국 박 회장이 주총에 앞서 자발적 퇴진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시아나항공의 감사의견 '한정' 사태와 관련해 금융위원회가 '시장이 신뢰할 수 있는 성의 있는 조치'를 회사와 대주주에게 요구한 만큼 박 회장의 부담 역시 커졌을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의 모회사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고속,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 아시아나IDT 순서의 지배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룹 전체 매출의 60% 가량을 책임지는 아시아나항공의 지난해 부채 비율이 700%를 넘으면서 재무건전성에 대한 시장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
조 회장은 주주 손에 물러난 첫 기업총수란 불명예를 안고, 지난 1999년 대한항공 대표이사에 오른지 20년 만에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박 회장은 지난 2009년 7월 경영권 갈등 등으로 스스로 회장직에서 사임한 뒤 2010년 채권단 요구로 복귀해 이번이 두 번째 경영 퇴진이다.
오랜기간 항공사 대표이사직을 맡아온 총수들의 부재에 경영공백이 우려되지만 시장은 반색했다. 전일 대한항공 주식은 전일 대비 4.78% 올랐고 이날 아시아나항공은 9거래일 만에 강세를 보이며 전날보다 2.92% 뛰었다. 금호산업도 장중 한 때 6.59%까지 뛰었지만 후반 들어 상승분을 반납했다.
총수들은 물러났지만 자녀들이 현업에 있는 만큼 3세들의 행보 역시 주목된다. 조 회장의 아들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은 대한항공 공동 대표이사로 주요 안건에서 영향력을 넓히고 있으며, 박 회장의 아들인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은 지난해 9월 사장으로 취임한 뒤 그해 11월 기업공개(IPO)에 성공하며 적극적인 경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디지털뉴스국 배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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