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김주하의 3월 22일 뉴스초점-구멍 뚫린 추징제도
입력 2019-03-22 20:13  | 수정 2019-03-22 20:57
보통 사기를 당해 돈을 떼이게 되면 억울하고 화가 나 죗값을 치르게 하고 싶지요. 하지만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죗값은 둘째. 우선 떼인 돈을 돌려받는 게 더 급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이게 참 어렵습니다. 왜일까요.

예를 들어보죠.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구속된 일명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 씨 형제는 1심에서 150억 원의 벌금과 60억 원이 넘는 추징금을 선고받았습니다. 때문에 법원은 이를 모두 납부할 때까지 형제가 재산을 처분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만, 동생은 소유했던 자동차를 20억 원에 팔았다죠? 이게 가능한가? 싶지만, 가능했습니다.

추징금은 범죄로 인해 발생한 수익에만 징수할 수 있거든요. 쉽게 말해, 범죄자에게 자동차든 집이든 재산이 있더라도, 그게 범죄로 인해 생긴 거란 걸 입증해야 추징할 수 있는 겁니다. 그걸 알아내는 게,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보다 더 힘들 것 같지 않나요?

또, 추징금은 범죄에 대한 처벌이 아니기 때문에 내지 않아도 강제 노역형에 처할 수 없고 집행 시효가 만료되더라도 검찰이 열심히 수사하지 않는 한 딱히 추징할 방법도 없습니다. 그 시효도 3년으로, 중간에 단돈 1원이라도 내면 다시 3년씩 연장됩니다.

그러니,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23조 원이나 되는 추징금을 안 내고, 전두환 씨는 2,205억 원에 달하는 추징금을 20년 동안 3년마다 찔끔찔끔 나눠 내며 시한을 연장하고 있는 거죠.

미국은 자금세탁범죄 수사와 몰수 재산 추적은 법무부에서 하되, 몰수 업무 자체는 외부 전문기관에 위탁하고, 혹시 몰수할 재산이 양도된 경우 이를 받은 사람이 범죄 수익을 은닉한 게 아니란 걸 직접 입증해야만 몰수를 면할 수 있게 해 놨습니다.

우린 검찰이 이 모든 걸 전담하기엔 시간도, 인력도 부족해서, 의지가 있어도 현실적으로 집행이 쉽지 않죠. 이렇듯 법이 문제라면 시스템이라도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해 8월까지 미납된 추징금은 무려 27조 원에 달합니다. 범죄자들은 법의 허점을 노려 재산을 숨겨놓고 버티고 있는데, 피해자들은 법이 이러하니 알고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 눈먼 법이 눈먼 돈까지 만들어 내니 죄인은 웃고, 피해자만 울고 있는 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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