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이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사유를 구체적으로 규정한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이에 환자단체는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김명연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11일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 8개가 나열돼있다.
거부 사유로는 환자나 보호자가 위력으로 의료인의 진료행위를 방해하는 경우, 환자가 의료인의 진료행위에 따르지 않거나 의료인의 양심과 전문지식에 반하는 진료행위를 요구하는 경우 등이 포함됐다.
김 의원은 "정신건강의학과 환자의 피습에 의해 의사가 사망한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환자의 폭력적 성향이나 심각한 정신질환 등으로 인해 진료 중 폭력 등 신변 위협 사유가 존재하는 경우 안전이 확보되기 전까지 진료 유보가 필요하다"며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개정안은 이밖에도 예약된 진료일정으로 새로운 환자를 진료할 수 없는 경우, 의학적으로 해당 의료기관에서 계속 입원치료가 불필요한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등을 진료 거부가 가능한 사유로 규정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15일 성명을 통해 "의료인의 '진료거부 금지의무'를 '진료거부권'으로 변질시키려는 안하무인 격 입법권 행사를 감행한 자유한국당 김명연 국회의원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진료거부가 정당한 경우들을 구체적으로 법률에 규정하면 결국 진료거부를 인정해주는 꼴이 된다는 비판이다.
현행 의료법 15조 1항은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 개설자는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법률상 권리로 '진료거부권'을 준 것이 아니라 '진료거부 금지' 의무를 부과한 것이라는 게 환자단체의 주장이다.
연합회는 "개정안은 의사에게 환자를 선택할 권리로써 전면적인 진료거부권을 인정하기 위한 단초로 보인다"며 "국민과 환자의 강력한 반대에도 의료계의 요청에 응답한 김 의원에게 우리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환자단체는 개정안이 지난해 말 정신건강의학과 환자의 피습으로 사망한 고(故) 임세원 교수의 유지를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연합회는 "임 교수와 유족은 차별 없는 정신질환 환자의 치료를 강조했다"며 "정신질환 환자의 폭력 위험 때문에 의사의 진료거부권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진료거부권 도입은 오진 의사 3명이 형사재판에서 금고형을 선고받자 대한의사협회가 의사의 과실에 대한 형사처벌 면제 특례법 도입과 함께 주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해당 법안 발의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의협은 "안전한 진료를 위해 진료거부 가능 사유를 명시한 개정안 발의를 환영한다"며 "그간 의협은 불가피한 경우 정당하게 진료를 거부할 수 있도록 그 정당한 사유를 법률에 명확히 규정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개정안의 진료거부는 환자를 선택하겠다는 것이 아닌 의료인의 보호권"이라며 "이는 국민들에게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의 진료환경을 조성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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