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단독] 올 주총도 `3%룰 대란…2개社 정족수 못채워 감사선임 불발
입력 2019-03-14 17:54  | 수정 2019-03-14 20:03
14일 주주총회가 열린 경남 양산시 유산동 진양산업 본사에선 직원들의 탄식이 새어 나왔다. 안건으로 상정된 감사 선임의 건이 부결됐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70여 명의 직원이 전국 곳곳에 주주들을 찾아다녔고 전자투표까지 도입했지만 감사 선임에 성공하지 못했다"며 "주소만 보고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주주들이 안 계셔서 허탈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 업체는 플라스틱 제품 성형 및 제조업체다. 주주 구성으로 보면 주총 참석을 유도하기 용이한 주요 기관투자가(5% 이상 주주)가 없는 대신 참여율이 낮은 소액주주들의 지분율이 49.04%에 달한다.
감사 선임을 위해선 '의결권 있는 주식의 4분의 1 찬성 및 출석 주식의 과반수 찬성' 요건을 갖춰야 하는데 애초부터 불가능한 싸움이란 경고가 회사 안팎으로 제기됐다. 진양산업의 대주주는 진양홀딩스로 이 회사 지분 50.96%를 보유하고 있지만 감사 선임의 경우 '3% 룰'이 적용된다. 아무리 지분이 많더라도 3%로 의결권이 제한된다.

나머지 22%의 찬성표를 오로지 소액주주를 통해 얻어야 하는데 결국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한 것이다. 올 주총 시즌에 '3% 룰'로 인해 정족수를 못 채워 주총 안건이 부결된 첫 사례다.
이날 코스닥업체 디에이치피코리아의 주총에서도 감사 선임 안건이 부결됐다. 이 업체는 공시를 통해 "주총 분산 프로그램 참여, 전자투표 도입 등 최선의 노력을 했지만, 감사 선임에 필요한 의결권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업체 역시 소액주주 비율이 55.5%로 높았다.
6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코스피 상장사 영진약품은 26일 주총을 앞두고 '소액주주 모시기'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이 상장사는 이미 작년에 두 차례나 주총을 열었지만 의결권 부족으로 감사위원 선임에 실패했다. 진양산업과 마찬가지로 전 직원이 의결권 위임 권유를 받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영진약품 지분 구조는 최대주주인 KT&G 52.45%, 소액주주 47.54%로 진양산업과 비슷하다. 최대주주가 절반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지만 '3% 룰' 때문에 올해도 감사위원 선임이 어려울 것이란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감사 선임에 실패하면 다시 임시주총을 열어야 한다. 될 때까지 열어야 하기 때문에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
업계 관계자는 "상장사 자체 노력으로 힘들면 의결권 대행 업체를 써야 하는데 이들이 상장사에 대해 억대의 비용을 요구해 중소기업들의 경우 주총 대란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날 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영진약품처럼 작년 주총에서 의결권 부족으로 감사·감사위원 선임에 실패한 상장사는 총 76곳이다. 올해는 이런 어려움에 처할 상장사가 154곳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다. 이 중 자산 규모가 1000억원 이상(상근감사 선임 의무 상장사) 되면서 5% 이상 주요 기관투자가가 없고, 소액주주 비율이 50%가 넘는 곳은 중견 상장사도 24곳이나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상장사 규모를 가리지 않고 주총 대란이 발생하게 된 것은 정부가 대주주를 견제하는 규제는 유지하면서도 상장사에 도움이 되는 제도를 없앴기 때문이다. 그동안 주총 참석자가 없어도 상장사들은 섀도보팅 제도가 있어 감사나 감사위원 선임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섀도보팅이란 정족수 미달로 주주총회를 열지 못하는 것을 막기 위해 주주 의결권을 한국예탁결제원이 주총 참여 주주의 찬성 반대 비율대로 대신 행사하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이 제도가 2017년 말 폐지되면서 작년부터 중소형 상장사들이 주총 대란을 맞고 있는 것이다.
상장사의 한 임원은 "섀도보팅이 폐지되면 주총 대란이 나온다고 정부를 끊임없이 설득했지만 돌아온 답은 '전자투표제를 도입하라'는 말뿐이었다"고 하소연했다.
한국상장사협의회 관계자는 "'3%' 룰은 국내에만 있는 제도로 상법상 너무 오래됐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용어설명
▷ 3%룰 : 상장사의 감사·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지배주주 등 주요 주주가 의결권이 있는 주식의 최대 3%만 행사할 수 있도록 제한한 규정을 말한다.
[문일호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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