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600마리 죽여도 집행유예…동물학대범에 관대한 이유
입력 2019-03-05 17:56 
동물학대 사건을 둘러싼 국민적 공분에도 불구하고 학대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미미한 수준이다. 민법상 물건인 동물의 지위를 생명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어린 자녀의 동물학대를 방관하는 부모가 올린 영상이 공개돼 대중의 뭇매를 맞고 있다. A씨는 지난 1일 개인 SNS 계정에 영상 하나를 게재했다. 이 영상에는 A씨의 자녀가 반려견인 포메라니안을 눕혀 놓고 때리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A씨는 영상을 게재하며 '오늘도 ○○은 개 패듯이 맞았다. 구두 사고 하루 만에 아작을 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문제 영상은 삭제됐지만 원본이 온라인상에 퍼지면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와 같은 국내 동물학대 사건은 매년 증가세를 보인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동물보호법 위반 건수는 2013년 113건, 2014년 198건, 2015년 204건, 2016년 244건, 2017년 322건으로 매해 증가했다.
이렇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동물학대에 대한 국민적 분노도 매우 큰 상황이다. 최근 대변을 먹는다는 이유로 분양받은 몰티즈를 집어 던져 사망케 한 사건 관련 청원에 현재까지 4만 4000여 명이 동의하며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촉구했다.
그러나 동물학대 사건을 둘러싼 국민적 공분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미미한 수준이다. 실제로 2015년에서 2017년 사이 발생한 동물학대 사건 중 가해자가 처벌받은 사건은 70건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68건은 벌금형에 그쳤고, 단 2건에만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실제 판례를 살펴보면 국민적 인식과 실제 형량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를 확인할 수 있다. 2016년 길고양이 600여 마리를 끓는 물에 모두 집어넣어 죽인 남성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일주일을 굶긴 반려견에게 강제로 막걸리를 먹이고 온라인에 인증사진을 올렸던 여성은 무혐의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이웃집 개를 기계톱으로 죽인 사건의 가해자에게는 고작 70만 원의 벌금이 선고된 바 있다.
수백 마리의 동물을 죽여도 집행유예에 그치는 온정적인 처벌의 이유는 동물이 민법상 생명체가 아닌 '물건'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동물의 죽음이나 피해를 단지 물건의 파손 정도로 바라본다는 뜻이다.
또 동물보호법에서 정한 동물학대 가해자에 대한 처벌 수위가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동물보호법 제46조의 벌칙 사항에 따르면 동물을 학대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처럼 형량 자체가 낮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동일범죄 전력이 없다면 정상 참작될 가능성이 커 현재까지 동물학대만으로 최고 형량을 선고받은 사례는 없다. 형량 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자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월 동물학대 행위로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상향 조정하는 등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전문가들은 "동물을 물건이 아닌 생명으로 규정해야 실질적인 동물학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2017년 3월에는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민법 98조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며 별도의 법률이 보호되는 한도 내에서 이 법의 규정을 적용한다'는 조항을 추가하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정의당은 지난달 23일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민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위해 동물복지위원회를 발족했다.
[디지털뉴스국 오현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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