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오픈된 닭장이지만 겨울에 그 흔한(?) 조류독감 한번 없었다"
입력 2019-03-05 16:39  | 수정 2019-03-08 14:07

"그 어떤 백신도 존재하지 않았던 대한제국 이전 조선시대 방법으로 키웁니다. 병아리 때부터 백신은 물론 항생제 등 접종주사나 화학약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키우겠다고 결심했고, 올해로 3년째 4000여 마리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최갑식 두레국제자연농업연구원 부원장)
국내 양계장 중에 암모니아 가스의 악취를 비롯한 분뇨냄새에 휩싸이지 않은 곳이 있을까. 일단 한군데는 있다. 포천통일두레농장이 그 곳이다.
◆분뇨냄새가 아닌 발효온도로만 채워진 양계장
지난 3일 방문한 포천통일두레농장은 뭔가 위화감이 들었다. 분명 양계장을 방문한다고 알고 있었지만 농장 500m 인근은 물론 양계장 바로 앞까지 갔는데도 분뇨냄새가 전혀 나질 않았다.
전날까지 엄청난 청소작업을 했던걸까. 아님 분뇨배출에 특화한 시스템이라도 적용한 곳일까. 현장에서 만난 최갑식 두레국제자연농업연구원 부원장 겸 포천통일두레농장주가 양계장 안으로 방문한 사람들을 몰아넣으며 닭장투어(?)를 하자고 권하기 전까지 든 생각이었다.
아뿔싸. 양계장 밖에서 설명을 듣는 일정이 아니라 안까지 들어가야 하는건가. 그런데 텔레비전에서 보던 것처럼 흰색 방역옷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덮기도 전에 최 부원장이 먼저 불쑥 양계장에 들어갔다. 아니 아예 옷을 갈아입거나 입은 옷 위에 무언가를 덮는 과정이 전혀 없었다. 막상 들어가서 보니 더 이상했다. 시멘트바닥에 겹겹이 케이지로 쌓인 일반 양계장이 아닌 닭들이 뛰노는 흙바닥 양계장이었기 때문이다. 흙? 흙바닥이라고?
◆지금까지 이런 닭장은 없었다? 아니 조선시대에 있었다
닭 사료와 분뇨, 기타 등등이 뒤섞인 흙바닥이라 그날 입은 옷은 물론 신발도 포기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들어선 찰나, 더더욱 이상한 일이 생겼다. 매일 만나는 양계장주가 아닌 신선한 타인(?)에게도 커다란 닭들이 전혀 두려움없이 다가왔던 것.

게다가 몇 마리는 아예 운동화까지 쪼아본다. "닭입장에서는 신기하기도 하고 친해지고 싶다는 제스처니까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최 부원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다만 일반 양계장과 달리 닭부리를 자르지 않았다는 설명에 황급히 닭들을 휘저었지만 이미 운동화는 살짝 패인 뒤였다.
신발 걱정을 순식간에 날리게 한 것은 고발프로그램에서 보던 것처럼 A4용지 한장 크기의 케이지에 가둬져 형광등 아래에서 잦은 산란을 유도한다는 일반 양계장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햇빛을 직접 쬘 수 있도록 설계한 포천통일두레농장의 천창이 열리는 구조의 양계사 내부 모습. 벽도 시멘트가 아닌 바람이 통하면서도 닭들의 이동만 일부 제한할 수준으로만 만들어져 있다. [사진 이미연 기자]
최 부원장은 "이 닭들이 양계사 구석구석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가끔은 사람이 드나드는 찰나를 틈타 양계사를 탈출해 밖을 노닐기까지 한다"며 "밖을 돌아다니면서 농장에서 기르는 유기견이나 동네 고양이와도 놀다가 저녁식사 즈음 은근슬쩍 양계사로 귀가해 횟대에 자리를 잡고 잠이 든다"고 귀띔했다.
양계장은 천창(天窓)이 열리는 구조와 열리지 않는 일반적인 구조 둘 다 있었다. 두가지 형태 모두 벽이 있어야 할 일부가 아예 뚫린 채였기 때문에 외부 공기가 드나들 수 있게 돼있었지만, 양계장 안에서는 전혀 냉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4000여 마리의 닭들이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흙바닥이었다.
최 부원장은 "처음부터 기존의 방법과는 전혀 다른 방법을 택했다. 햇빛, 미생물이 풍부한 흙, 그리고 따뜻하고 시원한 바람을 기본 조건값으로 양계사 구조를 설계했다"며 "병아리때부터 그 어떤 백신과 항생제 등 접종주사나 화학약품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3년 여간 건강한 닭과 달걀을 생산해 왔다"고 설명했다.
◆항생제·백신 배제한 자연농법으로 면역력 키워
비결은 자연농업으로 만든 토착 미생물을 기반으로 한 양계농법이다. 최 부원장의 분석에 의하면, 일반 양계장에서 악취가 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화학약품으로 살균·살충 처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처리 과정을 통해 깃털이나 장내에 해로운 미생물을 없앨 수 있지만, 동시에 유익한 미생물까지 죽여 자체 면역력마저 파괴돼 악취 가득한 분뇨가 나온다는 설명이다.
"우리 조상들은 짚과 짚뿌리에서 자생하는 고초균으로 콩속의 단백질을 발효시켜 된장과 청국장을 만들었다. 기본은 같다. 고초균 등 자연농업으로 만들어진 토착미생물을 발효시켜 만든 사료로 닭의 면역력도 강화하는 동시에 장내 단백질 분해를 도와 암모니아 가스 제거에도 효과가 있다"고 운을 뗀 최 부원장은 "자연농업 양계에서는 토착 미생물을 양계장 바닥에 짚 등과 섞어 뿌려서 자체발효를 유도한다. 닭의 분뇨 역시 자연발효되면서 잦은 바닥 청소없이도 닭장을 쾌적하게 유지할 수 있는 동시에 닭장 내 온도도 유지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렇게 양계장 건강을 유지한 덕분인지 최근 몇년간 겨울철마다 국내 농가의 사신(死神)처럼 등장해 온 조류독감 영향권에도 들지 않았다"며 자연농업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포천통일두레농장 양계사 내부 모습. [사진 이미연 기자]
◆자연농법의 최종 목적은 양계업이 아닌 '한국형 바이오산업'
최 부원장은 30여 년간 일반 회사에서 근무하다 은퇴 후 제 2의 인생은 '몸 쓰는 일'을 해야겠다고 판단, 현재 일에 뛰어들었다. 부인과 둘이서 기계 등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재래식으로 농장을 운영하면서 순수한 육체노동만 하루 16시간 이상이지만 요즘만큼 개운한 적이 없다고 강조한다.
3년 여간의 고된 노동은 그에게 자연농법을 활용한 부가산업 아이디어는 물론 유기농 식량산업으로 한국의 식탁을 건강하게 만들겠다는 의지도 만들어 줬다. 그의 최종 목적은 산란계와 육계, 계란(제품명 '자연농업 생명란')을 판매하는 업이 아닌 '한국형 바이오산업 육성'으로 성장했다.
"아무도 농약 등 화학물질로 범벅된 재료를 식탁에 올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건강한 식재료에 대한 갈망은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욕구가 아닌가"라고 반문한 그는 "자연농업에 대한 시도를 양계장으로 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바이오산업 패러다임의 변화다. 그 산업을 기반으로 서비스산업 일자리 창출까지 가능하다.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통일 이후 북한과 연계할 수 있는 산업까지도 구상하고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디지털뉴스국 이미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