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韓·獨 갤러리스트의 아름다운 7년 동업
입력 2019-03-05 16:30  | 수정 2019-03-05 16:49
최선희, 야리 라거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 2019. 2. 19. [헌주형 기자]

"부부인가요?"
2012년 초이앤라거 갤러리를 공동 설립한 야리-유하니 라거 대표(50)와 최선희 대표(46)가 가장 많이 듣는 소리다. 그들은 늘 웃으면서 "아니에요"라고 답한다. 라거 대표는 성악을 전공한 한국인 아내를 뒀고, 최 대표는 프랑스 금융인과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초이앤라거는 독일 쾰른과 한국 삼청동에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독일에서 한국 작가 전시를 열고 한국에 유럽 작가를 소개한다. 갤러리 이름은 두 사람 성(姓)을 따왔다. 삼청동 전시장에서 만난 라거 대표는 "레이디 퍼스트로 선희 성을 앞에 두니까 발음하기 좋았다. 동양과 서양 갤러리 연합 이미지도 있고 서로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나도 분단국가였던 독일 출신이라서 남북한이 갈라진 한국에 애정이 많다. 그동안 위기 상황이 많았고 힘들었지만 선희와 같이 하니까 시너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미국과 프랑스, 홍콩 아트페어에 많이 나가면서 글로벌 이미지를 갖게 됐다. 세계 갤러리들과 협업을 많이 한다"고 덧붙였다.
피를 나눈 가족도 동업을 하다보면 의견충돌이 생기는데 국적이 다른 두 사람은 어떨까. 최 대표는 "라거가 고집쟁이라 많이 싸운다. 주로 쾰른 초이앤라거 갤러리 디렉터를 맡고 있는 쌍둥이 언니(최진희)가 중재를 한다"고 말하며 웃었다. 라거 대표는 "일한지 오래 되서 동업자라기보다는 이제 가족이다. 동생과 싸워도 금방 화해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두 사람은 2005년 런던에서 처음 만나 14년 우정을 쌓고 있다. 크리스티 경매 학교를 졸업한 후 런던 차이니즈 컨템포러리 갤러리 큐레이터로 일하던 최 대표가 이범용·강수진·박종빈·김윤호 등 한국 작가 그룹전 초대장을 현지 화랑 400곳에 뿌렸는데 라거 대표를 포함한 단 2명만 찾았다.
최 대표는 "런던에 인맥이 거의 없어 갤러리 가이드 정보를 보고 초청장을 보냈는데 전시 마지막날 문닫기 30분 전에 라거가 방문했고 유심히 작품을 보더라. 그가 방명록에 이름을 쓸 때 용기를 내서 '어떻게 알고 왔느냐'고 물어봤더니 '당신이 초대장을 보냈잖아'라고 했다"며 오랜 기억을 끄집어냈다.
라거 대표는 "그날 마침 쌓여있던 우편물을 정리하는 날이었다. 2000년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를 방문한 후 한국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 전시를 보러갔다"고 말했다. 당시 비엔날레에서 대형 작품을 설치하고 있던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을 처음 만났다. 라거 대표는 "내가 만난 첫 한국 작가였다. 굉장히 웅장한 작품을 설치중이었고 30분 정도 대화를 나눴다. 교통체증이 너무 심하고 똑같은 회색 양복을 입은 샐러리맨들이 차도까지 내려와 택시를 잡고 있는 나라여서 이상하게 느꼈는데 혼자 서울 시내 미술관을 구경하고 한국 작가들을 만난 후 한국에 관심이 생겼다"고 회상했다.
영국 리슨갤러리 큐레이터로 일하다가 2003년 런던에 유니온갤러리를 오픈한 그는 2006년 '큰 손 컬렉터'인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 소개로 한국 작가 정수진·백현진·이형구·이동욱·권오상 그룹전을 열게 되면서 최 대표에게 SOS를 쳤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최 대표에게 유니온갤러리 매니저를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라거 대표는 "재능과 신뢰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작가와 컬렉터들이 선희와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칭찬했다. 이에 최 대표도 "병아리처럼 미술 경력을 쌓을 때 라거에게 많이 배웠다. 작품을 보는 안목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예술가 삶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오랜 인연을 맺는다. 청소나 작품 운반 운전 등 궂은 일도 가리지 않는다"고 라거 대표를 추켜세웠다.
초이앤라거는 작품 세계가 분명하고 전도유망한 30~50대 작가를 발굴해 꾸준히 지원하고 함께 성장해나간다. 지난해 쾰른에서 유진영·백현진·박경근·김을·샌정 작가 전시를 열어 유럽 컬렉터들의 호평을 얻었다. 국내에서는 영국 작가 데일 루이스와 매튜 스톤 등을 소개해 고정 컬렉터가 생겼다.
라거 대표는 "한국 작가들의 재능이 많아 영국 큰 손 컬렉터들이 구입을 많이 한다. 한국 미술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에 전시했는데 반응이 즉각 와서 흥분했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한국 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작가들을 좋아한다. 한국적 정체성을 드러내고 분단 상황에 메시지를 주는 작가들은 찾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 미술 시장은 젊은 작가들 작품에 인색해서 아쉽다. 최 대표는 "한국 컬렉터들은 국내 젊은 작가 작품을 잘 안 산다. 젊은 작가들이 사회에 나와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갤러리 시스템이 취약하다. 국내 대형 갤러리는 돈이 되는 원로 작가나 외국 유명 작가 위주로 소개한다"고 지적했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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