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기약없는 강남 재건축…"일단 고쳐서 살자"
입력 2019-03-01 17:20  | 수정 2019-03-01 20:44
재건축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경. [한주형 기자]
정부의 고강도 규제와 서울시의 잇단 심의 보류로 서울 노른자 재건축단지들의 사업이 기약 없이 연기되자 재건축단지들이 일제히 보수 공사에 나서고 있다. 가까운 시일 안에 재건축은 힘들 수도 있다는 판단에 미뤄 왔던 공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통상 재건축 대상 단지는 안전진단 시 노후도 평가를 높게 받기 위해 일부러 고치지 않거나 안전진단 이후라도 이중 비용 발생을 원치 않아 수리하지 않는다.
1일 각 재건축단지와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강남 대표 재건축아파트인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승강기 보수 공사 업체를 선정하는 절차에 돌입했다. 은마아파트는 전체 28개동의 승강기 42대에 대한 전면적인 보수 공사를 진행할 업체를 선정하는 입찰 공고를 지난달 22일에 냈다. 지난달 중순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도계위)에 은마아파트의 정비계획안이 또다시 상정되지 않은 직후 일이다.
총 4424가구의 대단지인 은마아파트는 1979년 준공돼 1990년대 후반부터 재건축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크고 작은 우여곡절을 겪어 오며 재건축 사업이 진척되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2년 전에는 내부 논의가 속도를 내면서 서울시에 정비계획안을 제출했지만 총 다섯 차례 반려됐다. 당시 서울시 도계위는 추진위가 제출한 '49층 초고층 재건축 계획안'에 대해 미심의 판정을 내렸다. 이후 주민 투표를 거쳐 35층 안으로 계획을 수정했지만 보류 중이다.
재건축에 대한 '실망감'은 집값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서울 강남 재건축아파트 값이 최근 1년 새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정부가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시행해 개발이익에 대한 세금을 높이면서 사업성이 낮아졌고 최근 들어 재건축에 대한 전반적인 열의도 예전만 못하게 식어 가고 있다는 얘기도 주민들 사이에 나온다.
은마아파트 주민 전 모씨는 "3월 중에 '서울시-국토교통부 정책협의회'가 열려 은마아파트 재건축 방안이 논의될 것이라지만 회의적 생각이 든다"며 "계속 재건축이 좌절되다 보니 이제는 장기적으로 주거 계획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재건축 대단지인 잠실주공5단지(1978년 준공·3930가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송파구 대표 재건축아파트인 잠실주공5단지도 미뤄 왔던 승강기 보수 공사에 나선다. 잠실주공5단지는 50층 재건축을 허가받았지만 사업 진행 속도가 더디다.
잠실주공5단지 전체 30개동의 승강기 55대에 대한 승강기 가이드롤러 교체 공사를 진행한다. 이 단지는 업체 입찰 공고를 지난달 25일에 냈다. 이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입주민들 사이에서도 '사는 동안은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는 주장과 '재건축을 위해서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면서도 "특히 안전 문제가 있는 승강기에 대해서는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보수 공사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두 단지보다 더 갈 길이 먼 재건축 단지들은 아예 대대적인 보수 공사에 나선다. 강남구 대치동 선경아파트는 아파트 외벽에 새로 페인트를 칠하기로 했다. 입주민을 대상으로 외벽 색상 선호도 조사를 마치고 페인트칠 공사에 들어갈 방침이다.

사실 아파트 외벽에 새로 페인트를 칠하는 것은 재건축 추진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외벽 도색 공사는 외관과 시설 수명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통상 재건축을 앞둔 단지들은 일부러 외벽 도색 공사를 미룬다. 그만큼 이 단지는 가까운 시일 내에 재건축이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단지는 이미 지난해 말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녹지를 주차장으로 전환하는 주차장 확장 공사를 한 바 있다.
이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아파트 외벽 도색공사는 5~6년마다 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 단지는 10년 만에 페인트칠을 하기로 결정했다"면서 "2015년쯤 재건축이 한창 진행돼 미뤄 왔던 보수 공사를 이제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윤예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