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美실리콘밸리 엔지니어 한국서 생체간이식 받고 새 삶
입력 2019-02-25 13:05 
서울아산병원에서 생체간이식 수술을 받은 미국 실리콘밸리 엔지니어인 칼슨씨가 지난 22일 생일을 맞아 수술을 집도한 송기원 교수와 의료진들의 축하를 받으며 케이크 커팅을 하고있다

미국의 손꼽히는 대학병원에서도 치료가 어려워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웠던 간경화 환자가 국내에서 생체간이식 수술을 받고 두 달 동안의 치료 끝에 건강을 회복했다. 이 환자는 미국 스탠포드 대학병원 의료진이 서울아산병원의 생체간이식 실력에 대한 믿음을 갖고 직접 부탁해 국내 의료가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수준임을 또 한번 입증됐다.
실리콘밸리에서 검색엔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던 찰스 칼슨(Charles Carson·47)씨는 2011년 몸이 좋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가 이유를 알 수 없는 간경화와 골수 이형성 증후군을 차례로 진단받았다. 골수 이형성 증후군은 조혈모세포 이상으로 혈소판, 백혈구 등의 혈액세포가 줄어 면역기능 이상, 감염, 출혈을 일으킬 수 있고 만성 백혈병으로 진행하게 되는 매우 위험 질환이다. 칼슨 씨는 미국 스탠포드 대학병원에서 골수 이형성 증후군 항암치료를 10회 이상 진행했지만 간 기능이 더 나빠져 더 이상 치료를 진행할 수 없게 되자, 간 질환 치료를 위해 미국 장기이식 네트워크(UNOS)에 뇌사자 간이식 대기자로 이름을 올려뒀다. 그러나 긴 대기 시간이 문제였다. 뇌사자 간이식을 받게 될지 모든 것이 불확실한 가운데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갔고 간 질환으로 인해 골수 이형성 증후군에 대한 항암 치료를 이어가지 못해 칼슨 씨의 상태는 갈수록 나빠졌다.
칼슨 씨가 다시 건강해질 수 있는 기회는 살아있는 사람의 간 일부를 기증받는 생체간이식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생체 간이식 경험이 적은 미국의 모든 간이식센터는 동반된 골수 질환 때문에 수술 후 회복을 장담할 수 없다며 수술을 꺼려했다.
재미교포로 스탠포드 대학병원에서 간을 전공하고 있는 교수가 칼슨 씨에게 "생체간이식은 미국보다 한국이 훨씬 앞서있다"며 서울아산병원을 추천했다. 칼슨 씨 역시 5000건이상 세계 최다 생체간이식 기록 뿐만 아니라 간이식 1년 생존율이 97%로 미국의 89%를 넘는다는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의 실적을 찾아보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서울아산병원 국제진료센터는 지난해 11월 초 홈페이지로 접수된 칼슨 씨의 진료기록과 검사영상을 검토했다. 스탠포드 의료진 역시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송기원 교수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 환자를 부탁해왔다. 송 교수는 쉽지 않은 케이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환자의 마지막 희망을 이대로 흘려보내게 할 수는 없었다. 결국 칼슨 씨는 작년 11월 중순 처음 한국을 찾아 진료를 받았다. 서울아산병원 의료진들은 모든 검사 결과 들을 반복해서 검토하고 여러차례의 회의를 거쳐 치밀한 수술 및 수술 후 치료계획을 수립했다.
지난해 12월 19일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은 칼슨 씨의 간이식 수술을 진행했다. 기증자는 부인(헤이디 칼슨·47)이었다. 기증자에게는 최소 절개 기법을 이용해 복부에 10cm 정도의 작은 절개부위만 내어 흉터와 합병증 가능성을 최소화했으며, 아내의 간 62%를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절제했다.
칼슨 씨는 간경화로 인한 잦은 복막염으로 인해 유착이 심했고 간 문맥 혈전과 많은 부행혈관들이 발달해 있어 고난도의 수술 술기를 요구하는 어려운 수술이었다. 보통 10시간 안팎으로 걸리는 다른 생체간이식 수술에 비해 18시간이라는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고, 긴 수술 동안 혈소판 16팩, 혈액 20팩 등 엄청난 양의 수혈이 진행됐다. 골수기능에 문제가 있고 예상보다 이식받은 간 기능이 빨리 회복이 되지 않았던 칼슨 씨는 수술 후에도 위험한 순간들이 종종 찾아와 오랜 기간 중환자실에 머물러야 했다. 하지만 두 달 가까이 이어진 서울아산병원 의료진들의 적절한 치료 덕분에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었고, 2월 중순부터는 일반병실에서 회복하며 아내와 함께 지낼 수 있었다.
칼슨 씨는 "한국에서 입원생활을 했던 두 달 넘는 기간 동안 의료진 모두가 나의 건강을 위해 많이 신경써준 덕분에 불편함 없이 회복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다시 미국에 돌아가서 아이들과 함께 게임을 하고 여행을 다니는 일상을 즐기고 싶다. 나와 가족들이 평범한 행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서울아산병원 모든 의료진에게 감사하다"며 소감을 전했다. 송기원 교수는 "환자를 처음 의뢰받았을 때엔 간경화로 인해 복수가 많이 차있었고, 여러 차례 항암치료를 받아 많이 쇠약해진 상태여서 결과를 장담할 수가 없었지만 환자와 가족들이 본인 병에 대한 이해가 깊고 워낙 치료 의지가 강했다. 치료과정에서는 의사뿐만 아니라 중환자간호팀 등 간이식팀 의료진 전원이 환자 상태를 매일 공유하고 고민하며 함께 노력했고 환자 상태가 악화되었을 때조차도 저희 의료진을 믿고 치료 과정에 잘 따라준 환자와 그 가족들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간이식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간 기능이 회복된 칼슨 씨는 스탠포드 대학에서 골수 이형성 증후군에 대한 항암치료를 다시 진행할 수 있게 됐다. 골수이식은 이식 후 1년 이상 정밀한 경과 관찰이 필요해 25일 미국으로 돌아가 미국 병원에서 받을 예정이다.
[이병문 의료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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