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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현정의 직구리뷰]‘엄복동’ 자긍심 오염시킨 함량미달 ‘국뽕’
입력 2019-02-20 07:30  | 수정 2019-02-20 08:57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이천만 조선을 열광시킨 위대한 역사, 그 자긍심을 단 번에 빼앗았다. 그동안 접한 그 어떤 한일전보다도 황당하고도 부끄러운, 애국심으로도 견디기 힘든 고문 같은 117분이다. 방황하다 완전히 길을 잃은, 보호자가 될 만한 누군가도 꼭 찾아주고픈, 미아가 된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이다.
역사 왜곡, 비약, 미화 등 창작물이라는 이유로 할 수 있는 과욕은 다 부렸다. 일제강점기, 그 암울한 시대 속 의미 깊은 승리에 대한 흥분만으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고 넘어 아예 저 멀리 가버렸다. ‘국뽕의 묵직함도, ‘신파의 감동도 느낄 수 없는, 역사적 아픔을 과감히 도구로 사용한 당황스러운 작품. 3.1운동이나 5.18 민주화 운동의 자발성, 민족의 저항정신에 대한 진정성이 전혀 와 닿지 않아 오히려 속상한 함량 미달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에서는 조선의 민족의식을 꺾고 그들의 지배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조선자전차대회를 개최한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엄복동의 등장으로 일본의 계략은 실패로 돌아가고 연이은 승리로 ‘민족 영웅으로 떠오른 그의 존재에 조선 전역은 들끓는다. 때맞춰 애국단의 활약까지 거세지자 위기감을 느낀 일본은 엄복동의 우승을 막고 조선인들의 사기를 꺾기 위해 최후의 대회를 준비한다.
영화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해 전 조선이 일어났던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이자 항일독립운동인 3‧1 운동의 의미와 정신을, 그 뜨거운 ‘민중의 저력을 ‘자전차왕 엄복동에 입힌다.
그의 승리가 억눌린 조선의 한을 달래고 독립을 향한 열망에 뜨거운 힘을 불어넣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통해 조선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 줘 이후 독립이라는 희망을 품게 하고, 결국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우게 된 뿌리라고 말하는 일차원적이고 방대한 비약을 서슴지 않는다. 이 만으로도 힘겨운데 여기에 로맨스, 효심, 가족애, 신파 등 갖가지 요소를 집어넣는다. 모두가 기억해야 할 가슴 벅찬 역사가 감독의 과욕으로 서서히 희화화되며 감동마저 무너져가는 순간, 또 다른 의미의 저항정신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엄복동을 지키기 위한 모두의 외침처럼, 관객 모두가 다시금 역사적 사실을 재검색해 혼란에 빠진 눈과 머리를 정화시켜야 할 과제를 안고 극장을 나서게 된다.
순수함과 모자름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정지훈을 비롯해 웬만한 주‧조연이 서로 화합되지 못한 채 각개 분투에 열을 올린다. 저마다 다른 시대에서 온 인물들이 모여 있는듯 적잖은 이질감을 선사한다. 사극과 현대극 사이의 어색한 톤과 과장된 캐릭터들, 전혀 양념 역할을 해주지 못하는 조연들과 음악, CG 등의 세부 장치들까지 모두가 한 마음으로 산으로 간다. 영화의 최대 악수였던 정지훈과 강소라의 로맨스는 메시지를 희화화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여기에 숨겨야 했을 ‘히든 카드 정석원은 끝내 영화의 호흡기를 떼고야 만다.
다만 영화를 본 관객들이 ‘엄복동에 대한 진실을 알고자 뜨겁게 인물 검색을 하는 긍정적 효과는 불러올 수 있을 듯하다. 오는 27일 개봉. 12세이상관람가. 러닝타임 117분.
kiki2022@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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