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 재조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논란이 될 것으로 예상됐던 공소시효 문제를 가습기 살균제 납품업체 전 대표 구속기소로 뛰어넘으면서 검찰의 칼끝이 빠른 속도로 SK케미칼(현 SK디스커버리)·애경산업의 '윗선'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들 기업은 옥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피해자를 낸 '가습기 메이트'의 제조·판매업체지만 처벌을 피해왔습니다. 원료로 사용한 CMIT(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의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오늘(19일) 검찰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권순정 부장검사)는 가습기 살균제 납품업체인 필러물산의 전 대표 김 모 씨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최근 구속기소 했습니다.
필러물산은 SK케미칼로부터 CMIT·MIT 원료를 받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만든 뒤 애경산업에 납품했습니다.
납품업체 전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발부했다는 것은 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아직 남아있으며, CMIT·MIT 원료를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이 있다는 것을 법원이 상당 부분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SK와 애경을 검찰에 재고발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가장 우려했던 것은 공소시효였습니다. 임직원들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및 중과실 치사상 혐의를 적용하면 공소시효가 7년인데, 피해 사례가 처음 나온 2011년을 기준으로 보면 시효가 지난해 끝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민단체 가습기참사전국네트워크의 김기태 공동운영위원장(변호사)은 "검찰이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더라도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처벌이 어려운데, 공소시효 문제가 법원에서도 해소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원료 물질인 CMIT·MIT 제조사인 SK케미칼과 필러물산의 공범 관계가 어느 정도 입증됐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옥시가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 원료인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를 제조하기도 한 SK케미칼은 PHMG 원료를 제조사가 아닌 중간 도매상에게 판매했기 때문에 그 물질이 가습기 살균제 용도로 쓰이는 몰랐다며 책임을 부인해왔습니다.
검찰은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실무진에 대한 조사를 이어가고 있는 상태입니다. 조만간 전 경영진 등 책임자에 대한 소환 조사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시민단체는 CMIT·MIT 원료의 유해성을 입증하는 연구 결과가 쌓이자 지난해 11월 최창원·김철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애경산업 전 대표 등 14명을 검찰에 고발한 바 있습니다.
CMIT·MIT 원료를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는 유공(SK이노베이션) 가습기 메이트, 애경 가습기 메이트, SK케미칼 가습기 메이트와 이마트 자체브랜드(PB) 상품인 이플러스 가습기 살균제, 이마트 가습기 살균제 등입니다. 대기업들은 제품 생산을 위탁하고 제품을 납품받은 뒤 자체 브랜드를 부착해 판매했습니다. 검찰은 이 때 살균제의 성분, 농도 등을 검사하고 관리하는 활동을 부실하게 했는지 조사 중입니다.
검찰은 대기업이 납품업체에 하청을 줄 때 원료 물질에 대한 유해성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안전 검사를 제대로 했는지, 제품에 화학물질 성분이나 인체 유해성을 제대로 표기했는지를 집중적으로 따져볼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자료를 보면, 폐질환 피해 이용자가 가장 많은 제품은 2002년부터 2011년까지 판매된 애경 가습기 살균제입니다. 이 제품 원청업체는 애경, 하청업체는 SK케미칼입니다. 접수된 피해자 총 1천 362명(단독 사용자 245명·다른 제품과 혼용한 사용자 1천 117명) 중 정부 지원금 대상인 1∼2단계 판정을 130명이 받았습니다.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1단계(가능성 거의 확실), 2단계(가능성 높음), 3단계(가능성 낮음), 4단계(가능성 거의 없음)로 판정해 분류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피해자가 많은 제품은 이마트 가습기 살균제로 원청이 이마트, 하청은 애경입니다. 모두 35명이 1∼2단계 피해를 인정받았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