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대법 "통상임금 신의칙 적용시 경영상 어려움 엄격히 판단해야"
입력 2019-02-14 12:25  | 수정 2019-02-21 13:05

대법원은 노동자가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정기상여금을 요구할 경우 회사는 지급을 거절할 수 있는 '경영상 어려움'을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오늘(14일) 인천 시영운수 소속 버스기사 박 모 씨 등 22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습니다.

재판부는 "노동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사용자에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여 신의칙에 위반되는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정해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고자 하는 근로기준법 등의 입법 취지를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재판부는 시영운수에 대해 "노동자들이 회사에 청구할 수 있는 추가 법정수당은 약 4억 원 상당으로 추산된다"며 "이는 회사의 연간 매출액의 2∼4%, 2013년 총 인건비의 5∼10% 정도에 불과하고, 회사의 2013년 이익잉여금이 3억원을 초과해 추가 법정수당을 상당 부분 변제할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대법원이 법원 판단으로 추가 지급해야 할 법정수당이 회사의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할 정도인지를 따질 기준으로 연간 매출액과 총 인건비, 이익잉여금 등을 제시한 첫 사례입니다.

박 씨 등은 2013년 3월 단체협약에서 정한 정기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그에 따라 연장근로수당을 다시 계산해 차액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재판에서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가 중요한 쟁점이 되지 않았습니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원칙이 이미 확립됐기 때문입니다.

대신 통상임금 신의칙을 적용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습니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임금을 더 주는 것은 기업의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므로 노동자는 추가 임금을 청구할 수 없다는 신의칙이 합당한지를 두고 하급심의 판단은 엇갈렸습니다.

박 씨 사건의 경우 1·2심은 "회사가 추가로 임금을 지급하면 예측하지 못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게 돼 신의칙에 반한다"며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박 씨 측 상고로 사건을 접수한 대법원은 신의칙 적용기준을 구체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2015년 10월 사건을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했습니다.

3년 4개월간 신의칙 적용기준을 심리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최근 사건을 다시 대법원 2부에 돌려보냈고, 대법원 2부는 "신의칙을 적용할 수 없다"며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서 제시된 내용만으로는 일반적인 통상임금 사건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신의칙 적용기준으로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당초 이 사건이 전원합의체에 회부되면서 노동계는 신의칙 적용을 둘러싼 논란을 법원이 정리해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번 판결이 미흡하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노동사건 전문인 한 변호사는 "이번 판결로 아시아나항공과 현대중공업 등 관련 소송에서 내려진 하급심의 엇갈린 판단들이 일제히 정리될 것으로 전망했지만 기대에 못 미쳤다"며 "여전히 개별 재판부에서 명확한 기준도 없이 추가 법정수당과 매출액, 인건비, 이익잉여금 등을 비교해 판단해야 한다는 점에서 바뀐 것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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