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불합격도 좋으니 알려만 주세요"…피 말리는 취준생들
입력 2019-02-13 15:27  | 수정 2019-02-13 15:42
대형 취업 커뮤니티 캡처 화면. 합격 발표 여부를 묻는 게시글이 수백 건 올라와 있다. 취업준비생 257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61.8%가 불합격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카페 캡처]

취업준비생 김 모씨(27)는 얼마 전 기업 2곳의 최종면접을 치른 후 말 그대로 피 말리는 시간을 보냈다. 최종 발표 일자가 고지돼 있지 않아 매일 같이 취업 커뮤니티를 오가며 결과가 나왔느냐는 질문 글을 올려야 했기 때문. 결과는 두 기업 모두 불합격이었다. 하지만 그는 불합격이라는 사실보다 탈락 통보 하나 없는 기업들을 보며 더욱 큰 비참함을 느꼈다.
김씨는 "커뮤니티에 글을 올릴 때마다 '혹시 발표가 이미 난 거면 어쩌지'하는 생각에 마음 졸였다"고 털어놨다. 그는 "합격 여부조차 발품 팔아가며 알아야 한다는 게 합격이 아니니 더는 필요 없는 존재라는 건가 싶어 착잡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의 합격 소식으로 자신의 불합격을 통보받아야 하는 취업준비생들의 좌절이 이어지고 있다. 2016년 잡코리아가 구직자 257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1.8%가 최종 면접 후에 불합격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취업준비생 10명 중 6명은 합격 여부를 알기 위해 불필요한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취업준비생들과 기업의 인식은 매우 동떨어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인사담당자 46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합격 여부를 통보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48.7%)였다. 이외에도 '불합격자 모두에게 통보하기가 어려워서(31.6%)', '시간 및 비용 문제 때문에(17.1%)', '불합격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불합격한 이유를 따져 물을 것 같아서(2.6%)' 등을 이유로 꼽았다.

불합격 통보는 필요 없다고 느끼는 기업들의 안일함 탓에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취업준비생들도 있다. 합격 발표를 기다리다 다른 기업에 지원할 시기를 놓치거나, 아예 지원을 포기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기 때문. 박민혜 씨(26)는 "불합격인지도 모르고 발표만 기다리다 공채 두어 개를 그냥 흘려버린 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박 씨는 이어 "연락이 안 오면 떨어진 것으로 생각하라는데 하염없이 전화기만 붙들고 있으라는 건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현행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10조는 '구인자는 채용대상자를 확정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구직자에게 채용 여부를 알려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이는 권고 사항일 뿐 현행법상 과태료 등 처벌 부과 대상에서는 빠져 있다.
오형섭 노무사는 "현재 법적으로 기업의 불합격 통보 의무를 정해두지는 않고 있다"며 "별도의 합격 여부를 알려주지 않아도 처벌의 대상이 되거나 불이익을 줄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현행법의 한계로 현재 국회에는 이를 보완할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지난해 7월 이태규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을 보면 현행 과태료 부과 대상에 '제10조에 따른 채용 가부 결과 고지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구인자' 항목이 신설됐다. 오 노무사는 "현재 발의돼 있는 개정안이 통과돼야 불합격 통보를 하지 않는 기업을 처벌할 법적 근거가 생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디지털뉴스국 오현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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