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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勢몰이로 주총서 기업 압박…100여社 초긴장
입력 2019-02-08 17:49  | 수정 2019-02-08 19:39
◆ 의결권 강화나선 국민연금 ◆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활용이 본격화하고 있다. 한진칼 오너 견제에 이어 남양유업 등 저배당 기업도 정조준했다. 한진칼과 남양유업이 특정 기업을 겨냥한 주주활동이라면 의결권 행사 사전 공시는 상장사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파급력은 더 큰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연금이 다른 연기금이나 자산운용사에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하면 사실상 주주총회를 앞두고 여론전의 선봉에 서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최대주주의 지분이 낮거나 총수의 임원 임기 만료를 앞둔 상장사들을 위주로 국민연금의 압박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8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1월 말 기준 국민연금이 1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는 79곳이다. 한라홀딩스(13.92%), 풍산(13.55%), 한솔케미칼(13.51%), 신세계(13.49%) 등이다.
지분이 10% 이상인 기업에 의결권 행사 방향을 사전 공시하겠다는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이들 상장사는 오는 3월 주총에서 모두 의결권 사전 공시 대상 기업에 포함됐다.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투자 포트폴리오 중에서 비중이 1% 이상인 기업도 의결권 사전 공시 대상이다. 시가총액 상위 상장사의 투자 비중이 큰 국민연금의 포트폴리오 현황을 감안하면 주요 대기업 상장사 상당수가 포함된다.
삼성전자(24.2%), SK하이닉스(4.3%), 포스코(2.5%), 네이버(2.4%), 현대차(2.2%), LG화학(2.0%), KB금융(2.0%) 등 21개사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외에도 수탁자책임위가 별도로 결정한 안건을 사전 공시할 계획인 점을 감안하면 대상 기업만 100곳이 넘을 가능성이 크다.
의결권에 대해 찬반 의사를 밝히는 것은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전부터 해왔던 주주활동이다. 한진칼에 대해 오너 일가를 견제할 정관 변경을 요구하거나 남양유업에 배당 정책 관련 위원회 설치를 요구하는 국민연금의 최근 주주활동 사례와는 결이 다르다.
하지만 의결권 사전 공시는 다수의 상장사를 대상으로 이뤄지는 활동인 만큼 주요 상장사에 미치는 여파는 훨씬 더 크다는 평가다.
한 수탁자책임위원은 "국민연금이 국내 시장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을 감안하면 한쪽 방향으로 의결권 행사가 쏠릴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전했지만 위원회 다수에 힘에 밀려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주요 시가총액 상위 대기업들이 두루 해당하는 만큼 시장에 미칠 여파가 큰데도 시민단체 추천 위원들의 강한 요구로 이 같은 내용이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의결권 사전 공시 결정은 국민연금이 여론전을 통해 주요 상장사의 의안에 대한 견해를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그동안 국민연금이 반대한 상장사 주총 안건이 실제 부결로 이어진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이 현실적으로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 컸다. 국민연금의 위탁운용 자금 유치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민간 자산운용사들로서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향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이 기관투자가들을 우군으로 확보해 주총 의결권 대결을 유리하게 끌어가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한 자산운용사 스튜어드십 코드 담당자는 "자산운용사마다 의결권 행사 기준을 두고 주총 때마다 행사 방향을 결정하고 있지만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면 따라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며 "국민연금이 기관투자가들의 목소리를 쥐고 흔드는 장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결정으로 최대주주의 지분이 낮은 상장사들은 국민연금의 압박이 커지게 됐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10% 이상 보유한 종목 중 엔씨소프트(12.01%), 하나투어(14.84%), 유한양행(15.63%), 호텔신라(17.24%) 등 9개사는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20%를 밑돌았다.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총수의 임원 임기 만료를 앞둔 상장사 역시 부담이 커지게 됐다. 올해 기업 총수가 임원 임기 만료를 앞둔 곳은 현대자동차, GS, 금호산업 등이 꼽힌다. 모두 3월 주주총회 전후로 임기가 끝난다. 국민연금이 이사 선임 반대 주주권을 행사할 경우 임기 연장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평가다.
사외이사 선임 역시 변수다. 삼성전자,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시총 상위 기업들은 이사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삼성전자는 사외이사 3명의 임기가 3월 중 끝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전체 5명 등기임원 중 4명의 임기가 오는 8월 9일 만료된다.
[유준호 기자 / 박의명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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