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포스트 상하이` 호찌민의 부동산 열기…강남개발 데자뷔
입력 2019-02-01 16:04  | 수정 2019-02-01 19:48
`호찌민의 강남`으로 개발될 투티엠지구에서 사이공강 너머로 행정·상업 중심지인 호찌민 1군 시가지가 펼쳐져 있다. 녹지 위의 노란색 건축물이 투티엠 최초 분양아파트의 견본주택이다. [사진 제공 = 거캐피털]
한강은 서울을 남북으로 가르고, 사이공강은 베트남 호찌민을 동서로 관통한다. 호찌민의 중심은 과거 베트남 대통령의 집무실이던 통일궁이 위치한 1군(district 1)으로, 서울 광화문과 명동을 연상시킨다. 사이공강 동쪽으로 1군과 마주보고 있는 660만㎡ 규모의 나대지가 투티엠지구인데, 호찌민시는 이곳을 "중국 상하이의 푸둥처럼 키우겠다"고 공언했다.
이곳에는 동서(도심~신공항)와 남북(빈탄~7구)으로 뻗는 고속도로와 지하철 2호선이 지나고, 시 최대 규모 광장과 공원, 오페라극장과 국제컨벤션센터가 들어온다. 강변에는 최고급 아파트 단지와 상업시설이 들어서 상주인구 15만명의 핵심지구가 탄생한다.
소위 '호찌민의 강남'으로 개발되는 곳인데, 곶처럼 뾰족하게 솟은 모양도 강남구 압구정동을 닮았다. 서울이 남동쪽을 개발 축으로 강남 개발에 나선 것처럼, 호찌민은 투티엠(2군)을 필두로 삼성전자 휴대폰공장이 있는 사이공하이테크파크(9군)까지 북동진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호찌민 1군에서 지하터널을 지나 투티엠지구로 들어서니 열대나무가 무성한 녹지 사이로 아파트 건설현장의 터파기 작업이 한창이었다. 투티엠에서 가장 진행 속도가 빠른 엠파이어시티 프로젝트는 세 번째 아파트단지를 분양하는 단계이다. 지난해 분양에서 472가구 공급에 5000명 넘게 몰리면서 현장에서 하루종일 제비뽑기를 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분양가는 2016년 1차 분양 때 전용면적 3.3㎡당 1000만원에서, 2017년 1250만원, 2018년에는 2170만원으로 급등했다. 한 블록 내에서 2년간 분양가가 두 배 넘게 오른 셈이다.

엠파이어시티 프로젝트 책임자인 토머스 탕 거캐피털 지배인은 "지난해 말 3차 분양은 사이공강 바로 앞에 있는 데다 부동산 경기까지 뜨거워 분양가를 초기보다 두 배 가까이 올렸는데도 90% 넘게 계약을 마쳤다"고 설명했다.
호찌민 1군 바손 지역 사이공강 바로 옆에 들어설 최고급 레지던스는 3.3㎡당 분양가가 5000만원 수준으로 강남 아파트 분양가 수준이다. 홍콩계 디벨로퍼 알파킹은 저층부(19층 이하)에 고급 호텔을 넣고, 고층부(20~45층)엔 410가구 규모 레지던스를 분양하고 있다. 레지던스의 전용 151㎡ 분양가는 200만달러(약 22억원, 옵션 제외), 전용 59㎡는 80만달러(약 9억원) 선이다.
45층에 들어설 전용 500㎡ 펜트하우스의 분양가는 무려 1700만달러(약 189억원)에 이른다. 2017년 말 호찌민시가 과다밀집지역인 1군 지역에서 주거 신축과 거래를 자제시키겠다고 발표한 뒤 이 지역 집값은 천정부지로 솟고 있다.
라우치킨 알파킹 프로젝트매니저는 "1월 초 개관한 견본주택에 하루 100명 넘는 고객이 방문하고 있다"며 "한국인 방문객 문의가 많아 다음주부터 한국인 직원이 출근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아파트뿐만 아니라 도심 외곽에 위치한 택지지구 빌라도 수십억 원을 호가한다. 25년 전 대만계 디벨로퍼가 개발한 푸미훙지구는 현지 고소득자나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에게 인기 있는 주거지다. 이곳 강변에 위치한 샤토캐슬 빌라촌(99가구)은 현재 시가가 40억~70억원 선에 이른다. 글로벌 부동산컨설팅 업체 CBRE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까지 호찌민의 고급·럭셔리 아파트 거래 중 76%를 외국인이 사들였다. 중국 투자자가 31%로 가장 많았고, 한국은 19%로 뒤를 이으며 홍콩(10%)을 크게 앞질렀다. 특히 상하이의 급격한 발전을 목도한 중국인들이 '포스트 상하이'로 뜨는 호찌민의 고급 아파트를 쓸어 담고 있다는 분석이다. 호찌민 럭셔리 아파트는 ㎡당 5000~1만2000달러 시세를 형성하고 있는데, 국내 전용 84㎡ 기준으로 보면 5억~15억원 수준이다.
베트남 정부는 2015년부터 외국인에게 주택의 50년 소유권(토지는 사용권)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국내 최대 부동산 디벨로퍼인 엠디엠그룹의 문주현 회장은 이날 투티엠지구를 방문해 이곳을 비롯한 호찌민 부동산 요지를 둘러봤다. 문 회장은 "호찌민의 사이공강 주변과 정부 인프라스트럭처가 집중되는 지역, 삼성전자 등 한국 투자가 이뤄지는 곳은 서울의 강남처럼 성장성이 높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며 "베트남은 높은 경제성장률과 젊은 인구구조, 낮은 도시화율을 종합적으로 감안하면 상당한 투자 매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호찌민 부동산 시장의 활황은 베트남의 가파른 경제 성장에 기인한다. 지난해 7%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베트남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 와중에 중국을 대체할 새로운 제조업 생산기지로 각광받고 있다. 삼성전자가 휴대폰과 가전제품 공장을 베트남에서 가동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베트남 인구는 지난해 9800만명을 넘어섰는데 평균 연령이 30.8세로 한국(41.1세)보다 열 살 이상 젊다.
투티엠에서 에코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롯데자산개발의 백운재 호찌민법인장은 "중국서 발을 뺀 상당수 기업이 '포스트 차이나'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를 꼽는다"며 "특히 호찌민은 국내외에서 자본과 인구가 집중돼 10년 후에는 상하이 푸둥처럼 변할 수 있다는 기대가 크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과거 한국 투자자들이 정점이던 베트남 주식 시장에 들어갔다가 크게 물렸던 것처럼 부동산 시장에 대해서도 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문 회장은 "외국인 자금이 몰리는 일부 고급 주택의 경우 가격이 과열된 것은 아닌지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향후 베트남 정부가 외국인의 자본이득 회수를 인정하는 싱가포르 모델로 갈지, 이를 불허하는 차이나 모델로 갈지가 중요 이슈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호찌민 = 전범주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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