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박병대, 대법관 당시 고교후배 사건 '셀프 배당' 의혹
입력 2019-01-20 17:50  | 수정 2019-01-27 18:05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두 번째 구속영장이 청구된 박병대(62) 전 대법관이 지인의 형사사건을 자신이 속한 재판부에 배당받는 과정에서 수상한 정황이 포착돼 검찰이 수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박 전 대법관이 대법원 내 자신의 집무실에서 피고인을 만나 사실상 법률자문을 해준 뒤 대법원에 사건이 넘어가자 자신의 재판부에서 무죄 판결을 내린 사실을 확인하고 배당조작을 비롯한 불법 여부를 확인 중입니다.

오늘(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박 전 대법관의 고교 후배 이모(61)씨로부터 "탈세 사건 상고심 재판을 맡아달라"는 취지로 박 전 대법관에게 부탁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투자자문업체 T사 대표인 이씨는 통신회선 제공업체 M사를 일본 업체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법인세 28억5천여 만원을 내지 않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로 2011년 8월 기소됐습니다.


1·2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이 나왔지만 검찰이 상고해 이듬해 8월 말 사건이 대법원에 접수됐습니다.

하급심 재판 과정에서 박 전 대법관에게 수시로 자문하던 이씨는 사건이 대법원까지 올라가자 박 전 대법관에게 자신의 상고심 재판을 맡아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검찰은 박 전 대법관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이씨를 수 차례 만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실제로 사건은 대법원 3개 소부(小部) 가운데 박 전 대법관이 속한 1부에 배당됐습니다. 주심은 나중에 박 전 대법관으로부터 법원행정처장 자리를 물려받은 고영한 전 대법관이 맡았습니다. 대법원 재판부는 2013년 11월 무죄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검찰은 박 전 대법관이 전산조작 등의 방법으로 사건 배당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이씨 재판을 스스로 맡았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배당 과정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배당이 정상적으로 이뤄졌더라도 박 전 대법관이 사건을 스스로 회피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형사소송법은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 법관이 사건을 회피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박 전 대법관은 이씨가 탈세 혐의로 재판을 받으면서 법인세·종합소득세 등 부과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세무당국을 상대로 낸 여러 건의 행정소송도 자문해준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습니다. 박 전 대법관은 2014년 법원행정처장을 맡으면서 재판 업무를 중단한 뒤에도 내부망을 통해 행정소송 진행상황을 알아보는가 하면 관련 재판연구관 보고서를 열람한 정황도 나왔습니다.

검찰은 2017년 3월 법원에서 퇴직한 임종헌(60·구속기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T사 고문 자리를 얻은 배경에 박 전 대법관의 부탁이 있었다는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건 배당 등 이씨의 청탁과 임 전 차장의 재취업 사이의 연관성이 입증될 경우 제3자뇌물수수 등 새로운 혐의가 성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씨가 제기한 행정소송 가운데 일부는 임 전 차장 퇴직 이후인 작년까지 대법원 심리가 계속됐습니다.

검찰은 일단 이씨가 1·2심 재판을 받는 동안 형사사법정보시스템에 10여 차례 무단 접속해 사건 진행 상황을 알아봐준 혐의(형사사법절차전자화촉진법 위반)를 추가해 지난 18일 박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을 재청구했습니다.

검찰은 이씨 형사사건 배당과 임 전 차장 재취업을 둘러싼 의혹은 추가수사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이르면 22일 열리는 박 전 대법관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 필요성을 주장할 계획입니다.

검찰은 또 박 전 대법관이 2015년 2월 부임 인사차 대법원에 찾아온 곽병훈 당시 청와대 법무비서관에게 "상고법원을 추진을 도와달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사건 항소심 판결에 대해 우병우 민정수석에게 잘 설명해달라"고 말했다는 관련자 진술을 확보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검찰은 이 면담 내용을 옛 사법부 수뇌부가 각종 재판을 청와대 뜻대로 처리하는 대신 상고법원 도입에 협조를 구했다는 '재판거래' 의혹의 정황증거로 보고 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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