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 김모 씨(28)는 지난해 말 겪었던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분통이 풀리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공공기관 취업을 희망하는 김 씨는 필기시험 합격을 위해 1년이 훌쩍 넘게 공부를 이어오고 있었다. 그만큼 필기시험 한 번을 통과하는 게 녹록지 않았던 것. 그리고 마침내 한 공기업의 필기시험에 처음으로 합격했으나 기쁨은 불과 몇 시간에 그쳤다. 점수 계산 과정에 착오가 있었다며 뒤늦게 합격이 취소됐기 때문이다. 김 씨는 "원래 불합격이었던 것이고, 제대로 일이 해결된 것은 맞지만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며 "합격 두 글자를 보고 기뻐했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후폭풍이 더 오래 갔다"고 말했다.
김 씨의 사례처럼 공공기관과 사기업을 막론하고 합격을 번복하는 일이 계속돼 취업준비생들의 좌절이 늘어가고 있다. 합격을 취소하는 사유는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채용 과정에서의 계산 오류. 채용 과정에서 명시한 자격증 가산점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결과가 뒤바뀌거나 면접 채점 시 점수를 잘못 계산하는 등의 경우가 해당된다.
지난해 11월 한국승강기안전공단은 공개 채용 과정에서 필기시험 합격자 발표를 번복했다. 합격 소식을 들었던 12명은 발표 다음 날 공단으로부터 착오가 있었다며 합격이 취소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는 자격증 가점 계산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기 때문. 추후 명단 재확인 과정에서 이 같은 오류가 발견돼 합격이 번복됐다. 지난달에는 경기 화성도시공사가 계약직 직원 특별채용 과정에서 면접 점수를 잘못 계산해 최종합격자가 뒤바뀌기도 했다.
시스템 오류로 명단 조회 시 불합격자가 합격자로 표시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삼양그룹은 2017년 진행한 공개채용에서 2차 전형 불합격자 370여 명에게 합격 소식을 전한 뒤 4시간가량이 지나서야 오류를 정정했다. 삼양그룹은 이후 발표 오류는 전산 문제로 인해 발생했다고 해명하고, 피해 지원자들에 사과했다. 최종 합격 발표가 뒤바뀌는 일도 있었다. 2016년 새마을금고는 하반기 공채 과정에서 최종합격을 번복했다. 당시 최종 합격 여부가 바뀐 사람만 320명에 달했다. 새마을금고 또한 전산 시스템 오류로 인한 문제였다고 설명했다.
비슷한 일을 겪은 취업준비생 정지혜 씨(27)는 "합격 발표가 나자마자 부모님은 물론 친구들에게까지 소식을 알렸는데 오류가 정정된 후 불합격이라는 통보를 받고 정말 참담한 심정이었다"고 떠올렸다. 그는 "회사 입장에선 대수롭지 않은 시스템 오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취업준비생들에겐 꽤 오래 가는 좌절"이라며 관련 시스템 재정비를 촉구했다.
최근에는 공채 대행업체의 허술한 운영이 청년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 공공기관 채용 비리 등 사회 전반적으로 채용과 관련한 적폐 청산 움직임이 확산하며 공채 대행업체가 성행 중이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외부 업체에 공채 전반의 업무를 맡기는 것. 그러나 기관과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가격을 기준으로 대행사를 선정하다 보니 채용 관리의 질이 떨어져 합격을 번복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지난해 6월 대행업체에 채용 외주를 줬던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은 공채 과정에서 필기 합격자 발표를 정정했다. 애초 업체가 합격자 인원을 잘못 계산한 탓에 불합격이었던 9명이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 문제였다. 이외에도 2015년 농협은행이 불합격한 1990명에게 서류 합격 통보를 한 바 있다. 이때도 농협은행은 서류접수 대행업체에 업무를 일임한 상황이었다.
합격이 불합격으로 뒤바뀌며 입은 정신적·물질적인 피해를 보상받을 방법은 없을까.
이에 대해 이석진 노무사는 "최종합격이 아닌 이상 채용과정에서 발생한 합격 번복으로 인한 피해는 법적 소송은 가능하지만, 승소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노무사는 "이 같은 상황에서 승소한 사례가 있으나 매우 특수한 상황"이라며 "최종합격 후 내부 사정으로 인한 채용 취소인 경우엔 근로계약이 체결됐다고 볼 수 있지만, 그런 경우가 아닌 이상 기업을 상대로 이길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디지털뉴스국 오현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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