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심상정 정치개혁특위 위원장 "선거制 개혁 안하는건 기득권 유지위한 꼼수"
입력 2018-12-12 18:59  | 수정 2018-12-12 21:10
심상정 국회 정개특위 위원장이 1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개특위로 송달한 선거제 개편에 관한 국회 논의 `독촉장`을 직접 들어서 보이고 있다. [이승환 기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요구하는 야3당의 국회 로텐더홀 농성에 참가한 심상정 국회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에게 12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선거제도 개혁은 정개특위의 역할이자 권한인데 위원장이 농성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정개특위의 권리는 내팽개치는 행위가 아닌가?"
이에 심상정 의원은 "정개특위는 아무 문제없이 운영되고 있지만 거대 양당 지도부의 결단 없이는 선거제 개혁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했다.
故 노회찬 전 정의당 원내대표의 영면 이후 교섭단체 자격을 잃은 정의당의 심 의원이 하반기 원구성에서 정치개혁특위원장을 맡게 된 것은 역설적으로 정의당이 정치적 패권을 갖지 못한 정당이라 가능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도 심 의원이 선거제도 개혁을 지역주의에 기댄 국회의원들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국민주권을 위해 밀고 나갈 적임자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당의 기득권은 5당(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이 모두 참여한 정개특위 협상테이블 위를 침범하기 시작했다. 집권여당의 이해찬 대표가 100%의 연동형 비례대표 도입을 부정하고 홍영표 원내대표가 페이스북에 "선거법 개정은 국회의원의 밥그릇을 챙기는 것"이라 밝히자,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큰 줄기로 정개특위를 이끌어 온 심 위원장의 구심력이 무색해진 것이다. 그렇게 심 의원은 7일째 단식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이정미 정의당 대표의 곁을 지키러 직접 로텐더홀로 나섰다. 이곳에서 심 의원은 매일경제와 만나 '민주당 책임론'을 강조했다. 이하 매일경제와의 일문일답.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야3당이 선거제도 개혁에서 민주당을 표적삼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다. 실제로 현재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반대하고 있는 것은 민주당이 아니라 한국당이지 않나.

=집권여당이 제1야당이 반대한다는 식으로 책임전가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왜냐하면 선거제도 개혁은 특정 당의 이해득실을 위한 것이 아니라 20년 동안 이어져 온 지역주의 극복, 사표 방지 등 바로 민주주의 그 자체의 발전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민주당이 DJ(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제안하고 발전시켜온 키워온 정치 개혁 의제다. 현재 민주당은 집권여당인만큼, 야당을 설득할 수 있는 협상 카드와 툴을 가동시킬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더군다나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이니만큼 지금이 선거제 개편을 위한 골든타임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동의하니깐 너네가 알아서 한국당 설득해봐"라고 할 것이 아니라 여당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 예산안 처리 강행같은 의지를 보여야 한다. 민주당은 선거제도 개혁을 마치 야3당만의 문제인 것처럼 치부하는 아마츄어 코스프레를 중단해야 한다.
-야3당이 당장 내년도 살림을 담은 예산안을 선거구제 개편과 함께 연계한 것을 두고 여론이 좋지만은 않다.
=예산과 현안을 연계시키는 것은 새삼스러운게 아니라 양당이 그간 만들어 온 관행이다. 여지껏 연계돼온 현안과 비교해보면 선거제 개혁이라는 당위적인 어젠다를 연계하는 것은, 그것도 힘없는 야3당이 연계하는것에 양당이 비난할 자격은 없다고 본다. 야3당 없이 양당이 예산안을 관철시킨 걸 보면 '연계'도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양당은 예산안 법적시한을 강조했는데 선거제도도 법적 시한이 있다. 내년 4월까지 선거구 획정해야 하는데, 12월 처리가 빠른게 아니다. 중앙선관위에서 선거구제 개편안 확정 촉구 서한을 11일자로 보내왔다. 아무리 뒤로 미뤄 2월 국회에서 최종 획정짓는다고 하더라도, 시뮬레이션을 그 전에 돌려봐야 해서 12월까지는 큰 틀에서 합의를 마쳐야 한다.
-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말하는가
=제도가 정치지형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제도 개혁 없이는 '대결정치'를 끝낼 수 없고 '협치'도 불가능하다. 20대 국회에서 물론 다당제라는 정치지형이 마련됐지만, 여전히 그 제도적 틀은 정권교체를 통한 보복을 부추기는 양당제에 기반해 있어 협치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선거제도 개편을 통해 제도적으로 온건다당제를 보장할 때 정책 중심의 정치가 가능해지고 연정을 토대로 국민에게 가장 득이 되는 정치를 할 수 있다. 지금은 지역주의에 기반한 정당들일지라도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돼 다양한 비전을 품은 정당들이 원내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비로소 노선과 정책에 따른 정당의 정렬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 때 '합리적 보수' 정당도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바른미래당은 합리적 보수를 자임하면서도 워낙 (한국당의) 원심력이 커서 자리를 잘 잡지 못하고 있지만, 안정적인 의석 수 확보가 가능해지면 합리적 보수 정당으로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의원정수 확대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적 반감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지독한 정치불신 속에서 의원정수 확대를 반대하는 국민적 저항감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지만 개탄과 냉소를 표현하는 국민들의 더 깊은 마음 속에는 국회가 잘해주길 기대하는, 좋은 정치에 대한 갈망이 크다. 양당제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현행 선거제에서도 20대 국회에 다당제 정치지형이 펼쳐진 것은 이미 국민들이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양당이 국민들이 반대하니깐 의원정수를 확대하지 못한다는 것은 진짜 국민들 뜻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불신을 방패막이 삼아 스스로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꼼수일 뿐이다. 정치의 힘은 말의 힘, 설득의 힘에 있다. 양당은 진짜 국민에게 신뢰받을 수 있는 국회 개혁 방안을 만들어 국민 앞에 엎드려야 한다.
-선거제 개혁에 대한 국민적 설득 작업에는 소홀할 느낌이다. 탈원전, 입시제도 등에 적용했던 '공론화 모델'을 선거제 개편에 대해서도 적용해볼도 있을 것 같다.
=국민적 공감대 확보를 위해 정개특위 산하에 둔 민간 자문위에서는 보수·진보를 떠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의견이 통일된 상태다. 어느 정도 정당 간 쟁점이 좁혀지면 공론화위를 구성해 디테일한 조율을 맡기는 것도 아이디어라 생각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공론화 모델을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선거구제 개편이란 국회 입법사항이니만큼 각 정당간의 큰 틀에서 원칙적 합의 없이는 아무리 공론화위에서 합의가 선결돼도 입법이 불가능하다. 정부가 정책적 방향성을 두고 공론화하는 것 하고는 결이 좀 다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표의 등가성은 높아지겠지만, '직접 내 손으로 인물을 뽑는' 우리나라 특유의 선거정서에 반하지 않을까
=과거에 유력 당대표들이 비례대표 사천을 자행하며 비례대표제가 불신대상이 된 것 맞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 80%라는 절대다수를 지역구 의원으로 내손으로 선출함에도 현재 그렇게 만들어진 국회가 커다란 불신의 대상이 되지 않았나. 내 주권을 국회의원이 대표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실제로 '당'이 국민의 의사를 대변한다. 중요한 현안은 당대 당 협상을 통해 타협되거나 결렬되기 마련이다. 정당 지지율이 의석수에 비례될 수 있게 해야 민심과 동떨어진 국회를 극복할 수 있다. 정책 경쟁을 하는 건강한 정당에 투표하고 공천비리를 자행하는 정당은 투표하지 않음으로써 국민주권을 강화하고 공천 과정의 공정성도 강제할 수 있다.
-선거제 개혁 논의가 개헌 논의, 즉 권력구조 개편 이슈와 함께 연동돼서 이뤄져야 할 필요성이 있어보인다. 독일 등 많은 나라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내각제라는 권력구조와 매칭되어 있다.
=선거제도가 권력구조와 일정한 관련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소선거구제가 대통령제에 맞고 비례대표제는 내각책임제와 한 쌍이라는 것은 현실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선입관이다. 이를테면 영국은 내각제와 소선거구제가 결합돼 있고 남미는 대통령제와 전면적 비례대표제가 결합돼 있다. 우리 정치구조만 봐도 이미 내각 책임제가 상당히 가미돼있다. 무조건 독일형을 베끼자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정치문화를 살펴 정치개혁안을 만들어야 한다. 저기 저 나라 제도가 옳으냐가 아니라, 바로 여기 이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가 가장 극복해야할 병폐는 양당제의 소모적인 대결정치 구도다.
[윤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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