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시인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최영미 시인은 오늘(2일) "한국 문단에서는 판도라의 상자가 아직 열리지 않았다"며 "더 많은 피해자가 미투를 외쳐야 세상이 변한다"고 말했습니다.
최 시인은 이날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SBS D 포럼'에 연사로 나서 "여성들이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사회는 미투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며 "우리는 말하기를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처음에는 처벌이 아니라 진심 어린 사과를 원했다"며 "지금은 처벌을 원하지만 공소시효가 지났다. 성범죄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미투를 진영논리로 접근하지 말고 더 크고 넓게 연대해야 한다"며 "미투는 남녀 간의 싸움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싸움으로, 서로 존중하며 평화롭게 공존하는 날을 위해 전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최 시인은 지난해 고은 시인의 성추행을 암시하는 시 '괴물'을 발표했다. 이 시는 서지현 검사의 폭로와 함께 한국 미투 운동의 촉매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시 '괴물'은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이라는 내용으로 시작됩니다.
이에 대해 최 시인은 "직접 경험하고 목격한 사실을 바탕으로 쓴 시"라며 "겁이 많아서 운전도 못 하는데 글 쓸 때는 이상하게 용감해진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최 시인은 원고 마감 전까지 본문의 'En'을 'N'으로 쓸지를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En'으로 보냈다고 했습니다.
또한 최 시인은 중학교 때 선생님에게, 대학교 때 민주화운동 동지에게 성추행을 당했지만 대응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으며 "문단에서도 성폭력에 맞서 싸울 용기가 없어서 첫 시집을 펴내고 작가 회의를 탈퇴하고 성희롱 술자리를 피하는 소극적인 대응밖에 못 했다"며 "성폭력을 천재 예술가의 기행으로 여기는 분위기에서 고발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왜 이제야 말하냐고 묻는데, 왜 이제야 물어보냐고 되묻고 싶다"며 "더 참고 싶지 않아 지금 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새로운 상식, 개인이 바꾸는 세상'을 주제로 열린 올해 포럼에서 최 시인은 두 번째 세션 '용기를 낸 사람들' 연단에 올랐습니다.
이 세션에는 최 시인 외에 할리우드 성폭력을 폭로한 배우 로즈 맥고언, '땅콩회항사건' 피해자인 박창진 대한항공 직원연대 공동대표 등이 참여했습니다.
박창진 공동대표는 "사건 발생 직후 나는 머리를 조아리며 '저의 불찰로 편하게 모시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과의 말을 하고 있었다"며 "복종에 익숙해져 그 순간까지도 자발적 복종자로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 공동대표는 "이후 생존을 위한 빵 한 조각을 생각하며 복종을 선택하고 피해를 감추거나 축소해야 했다"며 "그러나 아직 '을'들이 권리를 주장하기 힘든 사회에서 나라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한진 총수 일가는 올해 들어서도 '물벼락 갑질'과 탈세 의혹 등으로 비판을 받았습니다.
박 공동대표는 "그들이 또다시 본색을 드러낸 것은 '갑'들에게 너무 쉽게 주어지는 면죄부 때문"이라며 "세상을 만만하게 보는 그들을 '을'들의 목소리로 견제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