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키워드 K팝] FT아일랜드·씨엔블루 탄생시킨 `아이돌밴드` 名家
입력 2018-10-05 17:08  | 수정 2018-10-05 21:06
◆ 키워드 K팝 / ⑤ FNC엔터테인먼트 ◆
깔끔하게 차려입은 미소년들이 기타와 드럼을 친다. 록 밴드하면 떠오르는 거친 이미지는 어디에도 없다. 이홍기가 소속된 FT아일랜드와 정용화의 씨엔블루(CNBLUE)로 대표되는 아이돌 밴드 이야기다. 정확한 정의는 없지만 보통 엔터테인먼트사 기획으로 탄생한 록 밴드를 의미한다. 이들이 가는 곳에는 여전히 구름 떼 같은 팬이 몰려 '록 음악 침체기'라는 말을 무색케 한다. 위 두 팀은 모두 FNC엔터테인먼트 소속이다. 클릭비, 버즈 이후 뜸했던 아이돌 밴드를 한국에 정착시킨 이 회사는 엔플라잉(N.Flying·2015년 데뷔), 허니스트(Honeyst·2017년 데뷔)로 그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소속 K팝 그룹 6팀 중 4팀이 밴드 음악을 하고 있어 밴드 명가(名家)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매일경제는 FNC엔터테인먼트의 전략과 과제를 '아이돌 밴드'라는 키워드로 분석해봤다.
◆ 떴다하면 10만, 日흔든 FT아일랜드·씨엔블루
일본 전국의 운동 경기장을 돌며 콘서트를 여는 '아레나 투어'. 투어 한 번에 총 7~8회 공연이 포함된 데다 매회 1만5000석가량을 동원해야 한다. 트와이스 같은 최정상 걸그룹이 이를 성료해도 뉴스가 될 정도로 일본 내 인기를 보여주는 좋은 지표다. 2007년 데뷔한 FT아일랜드는 2011년부터 올해까지 7차례에 달하는 아레나 투어를 진행하며 거의 전회차 콘서트를 매진시키는 저력을 과시했다. 2010년 데뷔한 씨엔블루 역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8회에 달하는 아레나 투어를 완수했으며 매 순회 공연마다 10만명 가까운 관객을 동원했다.
한성호 FNC엔터 회장은 "대형 기획사에 밴드시장이 비어 있어서 아이돌 밴드로 가면 승산이 있겠다 싶었다"고 밝혔다. 2000년대 후반 정형화된 아이돌 그룹 속에서 악기를 들고 노래하는 FT아일랜드로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FT아일랜드와 씨엔블루는 한국에서는 꽃미남 밴드로 각광받고, 일본에서는 록 음악시장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황선업 음악평론가는 "초창기 두 팀은 상당수 곡을 남에게 받아 쓴다는 이유로 한국 록 음악 팬들 사이에서 선입견이 있기도 했다"며 "일본에서는 노래와 연주를 잘하면 밴드로 충분하다는 인식이 있어서 록 그룹과 동일선상에서 받아들여졌다"고 분석했다. 두 팀이 일본에서 승승장구하던 시기는 FNC엔터의 전성기와 일치한다. 2012~2014년 이 회사 매출은 320억원에서 600억원으로 성장했는데 2012년과 2014년에는 영업이익률이 20%에 달할 정도로 쏠쏠한 사업을 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 한 관계자는 "백댄서를 비롯해 여러 스태프를 데리고 다녀야 하는 일반 아이돌 그룹은 1회 공연에 투입되는 비용이 크다"며 "밴드는 멤버와 악기만 있으면 어디서든 공연을 할 수 있어 이익이 많이 남는다 "고 말했다.
◆ 힙합, EDM 부상과 함께 찾아온 위기
FT아일랜드와 씨엔블루의 연이은 성공에 고무된 FNC엔터는 2012년 걸그룹 AOA를 데뷔시킬 당시 밴드 성격을 부여하기도 했다. 이들의 동생 밴드인 엔플라잉을 2015년에, 허니스트를 2017년에 론칭했다. 하지만 아직 두 밴드가 기대만큼 화제를 모으지 못하고 있고, 댄스 기반 보이그룹 SF9은 대중 인지도가 낮아 회사 핵심인 가수 매니지먼트 사업이 약화돼버렸다. 아울러 올해 초 씨엔블루 주축인 보컬 정용화가 입대하고, 조만간 FT아일랜드 핵심 멤버 보컬 이홍기도 입대할 예정이라 밴드 명가의 이미지는 당분간 이어가기 어려워 보인다. 지난 상반기엔 31억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이 났다.

전문가들은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과 비교해 급변해버린 가요 환경을 FNC엔터 부진의 원인으로 꼽는다. 정병욱 평론가는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서구 아이돌 팝의 한 주류를 차지했던 틴에이지 '팝 록'이 현재 국내에서 아이돌을 소비하는 젊은 층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기 어려운 상태"라며 "한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시장의 경우 이미 오랜 기간에 걸쳐 힙합, R&B, 전자 음악 위주로 재편되고 있고, 국내 젊은 소비자들의 취향도 이에 뒤따르고 있다"고 봤다.
이제는 가요계에서 아이돌 밴드가 희소성이 없다는 점도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이 회사에만 이미 네 팀의 밴드가 있을 뿐만 아니라, 더 이스트라이트, 아이즈, 데이식스 등 타사 아이돌 밴드도 많아졌다. 황 평론가는 "현재 한국에서 록 음악은 먹히지 않는다"며 "일본 록 음악시장이 여전히 살아 있다고는 해도 경영진 입장에서 국내시장을 완전히 배제한 채 후속 팀을 록 밴드로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회사가 가수 매니지먼트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반야 음악평론가는 "드라마 제작, 개그맨 영입 등으로 규모는 커지고 있다"면서도 "하나의 콘셉트를 장기적으로 확장시키는 지구력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 내년 칼군무 중심 걸·보이그룹 론칭해 반격
FNC엔터는 올해 말~내년 초 글로벌향 걸그룹, 내년에 보이그룹을 데뷔시키려 준비 중이며, 두 팀은 대중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아이돌 그룹 모습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칼군무를 기반으로 한 K팝 그룹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는 시기에 아이돌 밴드를 내는 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아티스트 출신 회장이 주축이 돼 퍼포먼스가 뛰어난 인재를 뽑는 데 두각을 드러내온 만큼 팀 색깔만 분명하게 하면 인기 아이돌 그룹 제작은 어렵지 않다는 게 전문가 중론이다.
다각화했던 사업 영역은 매니지먼트에 보다 집중할 전망이다. '언니는 살아있다' '란제리 소녀시대' 등 드라마를 만들었던 제작사 FNC애드컬쳐(현 SM라이프디자인) 지분은 상당 부분 SM엔터테인먼트에 넘기고, 최대주주에서 2대주주로 내려왔다. 업계 관계자는 "흔히 말하는 엔터 공룡들처럼 자본이 넉넉한 게 아니니 당분간 사업 확장보다는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에 집중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창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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