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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현정의 직구리뷰]견뎌내니 비로소 ‘뷰티풀 데이즈’
입력 2018-10-05 07:40 
[매일경제 스타투데이(부산)=한현정 기자]
기막힌 현실, 기구한 운명이다. 처절하고 애처롭고 가슴이 아린다. 끝이 없을 것만 같은 비극의 연속이지만 포기하지 않으니 비로소 마주하고야 만다. 그들의, 누군가의, 우리의 ‘뷰티플 데이즈를.
배우 이나영의 긴 공백기를 깬, 올해 부산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뷰티풀 데이즈(감독 윤재호)가 베일을 벗었다. 큰 기대에도 실망감을 느낄 새란 없으니, 그녀의 선택은 진정 옳았다.
대학생이 된 젠첸(장동윤)은 14년 만에 어머니(이나영)를 만나러 한국을 찾는다. 중국에 사는 조선족 아버지(오광록)가 ‘죽기 전 아내를 꼭 한 번 다시 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막상 눈앞에 나타난 어머니는 기대했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술집에서 일을 하고 건달처럼 보이는 남자와 함께 살고 있으며 그다지 친절하지도 않다. 남들이 보기에 남매로 오해할 정도로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질 않는다. 왜 자신과 아버지를 버리고 간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고, 서운한 감정만 더 커진 채 중국으로 돌아가지만 어머니가 남긴 공책 한 권을 통해 숨은 진실을 알게 된다.
마치 미스터리로 시작하지만 결국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탈북 여성인 주인공은 돈에 팔려 조선족 남편과 결혼하게 되고 이후에도 비루한 삶은 계속된다. 두 번의 가정해체를 통해 온갖 아픔과 상처의 나날을 보내지만 그럼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 만의 방식으로 꿋꿋하고도 덤덤하게 현실을 헤쳐 나간다. 종국에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가족 관계는 복원된다. 비로소 ‘뷰티풀 데이즈를 맞이한다.
역설적인 제목, 그래서 더 깊게 와 닿는 메시지. 아름다운 시절이 한 순간도 없었을 것 같은 주인공의 위태롭고도 잔인한 생존을 지켜보면서 관객은 결국 피해자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가슴 깊이 받아들이게 된다. 혈연의 굴레를 벗어난, 인간애에 기반한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목도하며 생경하지만 잊을 수 없는 깊은 먹먹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영화는 단편 ‘히치하이커와 다큐멘터리 ‘마담B로 2016년 제69회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받고, 같은 해 모스크바국제영화제와 취리히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작품상, 2017년 우크라이나키에프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윤재호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복고적이면서도 사실적이고 감각적이면서도 독특한 미장센이 눈길을 끌며, 배우들의 깊이감 있는 하모니가 완성도를 극대화시킨다.
오랜 만에 만나는 이나영의 변함없는 진가는 물론, 기대 이상의 놀라움을 안긴 장동균의 발견 또한 반갑다. 비극의 끝에 마주하는 소소한 그러나 가장 위대한 희망의 한 줄기가 제대로 가슴을 관통한다. 오는 11월 개봉.
kiki2022@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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