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김주하의 10월 01일 뉴스초점-오락가락 성범죄 판결
입력 2018-10-01 20:07  | 수정 2018-10-01 20:23
엘리베이터 안까지 뒤따라가 모르는 여성의 신체 일부를 몰래 촬영한 남자, 시내버스 안에서 휴대전화로 여성 8명의 허벅지를 촬영한 남자.

이른바 몰래카메라를 찍은 이들은,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두 무죄입니다. 아니,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유는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시야에 보이는 부위를 촬영한 데다 노출이 그리 심하지 않은 옷이었기에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겁니다.

2년 전엔 지나가는 여성들의 스타킹에 검은색 액체를 뿌려 더럽힌 뒤 여성이 이 스타킹을 벗어 버리면 그걸 갖고 성적 욕구를 해소했던 일명, '강남역 스타킹 테러 사건'도 피해자가 직접적으로 성적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다며, 성범죄가 아닌 재물손괴죄로 처벌했습니다. 그래선지 이후 서울과 부산 등 곳곳에서 유사 범죄가 연일 발생했었죠.

그런데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헤어진 연인에게 성적 비하 표현 문자를 보낸 남성에게 대법원이 유죄를 선고한 겁니다. 상대가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면서요. 사진을 찍고 착용했던 물건을 성적 도구로 활용한 건 무죄인데, 휴대폰 문자 메시지는 유죄.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란 건지… 이렇게 된 이유는 애매한 법 때문입니다.

법에는 공개된 장소에서 상대의 동의 없이 성적 수치심을 야기할 수 있는 신체 일부를 촬영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습니다만, 그게 전부 어디서, 어디를, 어느 정도로 찍을 때인지 명확하질 않고,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 걸 판단하는 근거도 없습니다. 그러니 판결은 법관의 판단에 따라 그때 그때 달라지는 거죠. 대부분의 국가는 성범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정해놓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지나가는 여성에게 눈웃음만 보여도, 미국은 신체 부위에 따라, 터치 정도에 따라 형량을 나누기도 합니다.

얼마 전엔 한 60대 남성이 예식장을 돌며 신부들의 사진을 몰래 찍어 붙잡혔는데, 경찰이 고민이라고 합니다. 공개적으로 찍은 사진이라 처벌 규정이 애매하거든요. 공개된 장소에서 상대의 동의 없이 촬영하면 처벌을 받는다고 법에 명시돼 있음에도, 성적 수치심을 야기한다고 볼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애매한 법 때문에 고통받는 건 비단 여성뿐만이 아닌가 봅니다.

법은 사회의 그 무엇보다 명확해야 합니다. '몰카 공화국'이란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그 애매한 법부터 바로 고쳐주길 바랍니다. 지금처럼 서로 싸우지만 말고들 말이죠.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