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리용호 연설 "미국에 대한 신뢰 있어야 핵무장 해제 가능"
입력 2018-09-30 08:19  | 수정 2018-10-07 09:05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29일(현지시간) "미국에 대한 신뢰 없이는 우리 국가의 안전에 대한 확신이 있을 수 없으며, 그런 상태에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먼저 핵무장 해제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리 외무상은 이날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제73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비핵화를 실현하는 우리 공화국 의지는 확고부동하지만, 이것은 미국이 우리로 하여금 충분한 신뢰감을 가지게 할 때만 실현 가능하다"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리 외무상은 15분간 진행된 기조연설에서 시종 북미 간 신뢰 구축을 앞세워 미국의 상응 조치를 요구했습니다.

이는 비핵화 의지를 거듭 부각하면서도 종전선언 등 북한의 체제보장을 위한 미국의 동시행동 조치를 압박한 것입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과 가시권에 접어든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북미 비핵화 협상이 본격적으로 재개되는 국면에서 기 싸움이 격화되는 양상입니다.


북한이 실행한 "중대한 선의의 조치"의 사례들로는 핵·미사일 실험 중단 및 핵실험장 폐기 등을 꼽았고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에 대해 확약했다"며 '비확산' 의지도 드러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의 상응한 화답을 보지 못하고 있다"며 "미국은 조선반도 평화체제 결핍에 대한 우리의 우려를 가셔줄 대신 선(先) 비핵화만을 주장하면서 그를 강압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제재 압박 도수를 더욱 높이고 있으며 종전선언 발표까지 반대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리 외무상은 "제재로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의 망상에 불과하지만, 제재가 우리의 불신을 증폭시키는 게 문제"라며 "조미 공동성명의 이행이 교착에 직면한 원인은 미국이 신뢰조성에 치명적인 강권의 방법에만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리 외무상은 "미국은 70년 전 공화국이 탄생한 첫날부터 우리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실시해왔으며, 자국 기업들이 우리나라와 나사못 한 개도 거래하지 못하게 하는 철저한 경제봉쇄를 감행하고 있는 나라"라며 "우리는 미국땅에 돌멩이 한 개 날아간 적이 없지만, 미국은 조선반도 전쟁 시기 우리나라에 수십 발의 원자탄을 떨구겠다고 공갈한 적이 있는 나라이며 그 이후에도 우리의 문턱에 끊임없이 핵전략 자산을 끌어들인 나라"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 위협도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기 위한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리 외무상은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수십년 간 지속된 핵위협에 대처할 방위력과 전쟁억지력을 다져놓은 상황에서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해야 할 역사적 과업에 나서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리 외무상은 6·12 북미정상회담에서 채택된 북미 공동성명이 이행되면 "조선반도에 조성된 현재의 완화 기류는 공고한 평화로 정착되고,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도 실현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세계 최대의 열점이었던 조선반도는 아시아와 세계 안전에 기여하는 평화와 번영의 발원지로 전환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리 외무상은 "공동성명이 원만히 이행되려면 수십 년 쌓인 불신의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면서 "조미 두 나라가 과거에만 집착해 상대방을 무턱대고 의심만 하려 든다면 이번 공동성명도 지난 시기 실패한 다른 조미 간 합의들과 같은 운명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어 "조선반도 비핵화도 신뢰조성을 앞세우는데 기본을 두고 평화체제 구축과 동시 행동 원칙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단계적으로 실현해야 한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며 동시행동·단계적 실현 원칙을 재확인했습니다.

리 외무상은 "조미 수뇌회담의 가장 중요한 정신 중의 하나는 쌍방이 구태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기로 합의한 것"이라며 미국이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을 성실히 지키는 게 "궁극적으로 미국의 국익으로 이어진다는 선견지명 있는 판단을 내리고 조미 관계 해결의 새로운 방식을 견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미국 내 대북 회의론 또는 비관론에 대해선 '정치적 반대파들의 정적 공격'으로 규정했습니다. 자칫 6·12 북미공동선언 이행이 무산되는 상황을 '미국 국내 정치의 희생물'로 표현하면서 "예측 불가능한 후과의 가장 큰 희생물은 바로 미국 그 자체가 될 것"고 경고했습니다.

리 외무상은 "우리 공화국을 믿을 수 없다는 험담을 일삼고, 받아들일 수 없는 무례한 일방적 요구를 들고 나갈 것을 행정부에 강박하여, 대화와 협상이 순조롭게 진척되지 못하게 훼방하고 있다"면서 "불신을 고취하면서 강권에 매달리는 것은 결코 신뢰조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이름은 한 번도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 대해선 우호적 태도를 견지했습니다.

리 외무상은 남북관계 개선 상황을 거론하면서 "만일 비핵화 문제의 당사자가 미국이 아니라 남조선이었다면 조선반도 비핵화 문제도 지금 같은 교착상태에 빠지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며 "우리가 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해 조미 사이 신뢰조성을 중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고 말했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들에 대해서도 "(핵·미사일) 시험들이 중지된 지 1년이 되는 오늘까지 제재결의들은 해제되거나 완화되기는커녕 토 하나 변한 게 없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특히 "남조선 주둔 유엔군사령부가 북남 사이의 판문점 선언의 이행까지 가로막는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면서 "유엔의 통제 밖에서 미국의 지휘에 복종하는 연합군 사령부에 불과하지만, 아직도 신성한 유엔의 명칭을 도용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비난했습니다. 유엔군사령부가 남북의 북측 구간 철도 현지공동조사를 막으려 한 것을 겨냥한 발언으로 보여집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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