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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 美·中 무역전쟁, 한국에 기회될수도
입력 2018-09-17 17:31 
한국 샌드위치론을 처음 언급한 건 2007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다. 일본에는 기술로, 중국에는 가격으로 밀려 한국 제조업 경쟁력이 크게 후퇴할 것이니 철저하게 기술력으로 무장하는 초격차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논리였다. 실제로 한국의 주력 제품 경쟁력은 이후 상당 부분 약화됐다.
그러나 작지만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미국이 2000억달러 규모로 중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를 강행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중국으로 향하는 중간재 수출이 막히며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것이란 염려가 많지만 중국과 수출 경합도가 높았던 업종은 새로운 기회가 창출될 수 있다. 실제로 프랭클린템플턴의 신흥국 투자담당이었던 마크 모비우스는 인도와 한국이 미국의 직접적인 공격을 받는 중국과 멕시코의 빈자리를 채우며 반사이익을 취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수출 경합도 지수란 것이 있다. 경쟁 관계에 있는 두 국가가 한 시장에서 특정 재화의 수출을 두고 경합을 벌일 때 경쟁 강도가 얼마나 높은지 측정하는 지표로, 1에 가까울수록 경쟁이 심한 것이다. 한중 수출 경합도는 2000년 0.331에서 2016년 0.39로 상승했다. 석유화학과 철강, 철강제품, 기계, 정보기술(IT), 자동차, 조선, 정밀기기 등 8대 수출 품목은 2016년 기준 0.47까지 올라왔다. 철강, IT업종은 최근 경합도가 소폭 하락하기는 했지만 2000년 초에 비해 여전히 높고, 석유화학·정밀기기·조선업종 등에서는 경합도가 0.5 이상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수출 경합도가 높은 업종일수록 반사이익을 얻을 여지도 크다. 무역협회 분석에 따르면 중국이 관세를 부과받게 될 미국 시장에서는 휴대폰과 부품, 전기전자, 조선, 석유제품 등이 전통적으로 한중 경합도가 높다. 아시아 시장에서는 제조업이 발달한 베트남에서 한중 경합도가 높은데 섬유, 휴대폰, 반도체, 디스플레이가 0.7 이상의 경합도를 보인다. 미국의 관세 부과로 수출이 어려워진 중국산 부품이 여타 시장으로 유입된다면 중국과의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원산지 기준(역내 부품조달 비율)을 엄격하게 요구하고 있어 중국산 부품의 과도한 사용은 부담스러워질 가능성이 있다.
이미 한국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장부가치 1배 수준까지 하락했다. 무역분쟁 이슈는 상당 부분 주가에 반영됐을 가능성이 크다. 극단적 비관론은 지양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과학기술평가원 데이터에 따르면 대부분 업종에서 중국과 한국 간 기술 격차는 1년 정도로 좁혀졌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소비하고 중국이 생산하는 불균형한 구조 개선을 염두에 두고 있다. 미국은 일자리가 필요하고, 중국은 시장을 개방하며 내수를 확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한국 기업도 있겠으나 기회가 발생하는 영역도 많아질 것이다. 샌드위치론에 가려져 있던 디스플레이, 휴대폰·부품, 조선·기계, 섬유 등 대표적 업종에서 한국 제조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점유율 확대를 기대해 본다.
[박소연 한국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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