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마이크로바이옴 산업계의 기술력은 세계적 수준이지만 정부, 연구자, 의료계, 기업들 사이의 협력이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뒤처질 위기인 것으로 분석됐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인간의 몸속에서 함께 공존하고 있는 미생물의 유전정보 전체를 뜻하는 말로 세컨드 게놈이라고도 불린다. 이전까지 사람마다 몸 속의 미생물 생태계가 다르고 미생물의 수도 100조마리에 이르러 미지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최근 개별 미생물 종의 역할을 밝히고 이를 조절해 질환을 치료하거나 의약품 반응율을 높이는 수준의 연구까지 이뤄져 식품·의료 산업계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휴먼마이크로바이옴협회 등이 지난 9일 개최한 '제2회 마이크로바이옴 컨퍼런스'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대체로 마이크로바이옴 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미국·일본과 한국의 기술력 격차가 크지 않고,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김지현 연세대 교수는 "(한국의 마이크로바이옴 기술력은) 비교 대상이 미국, 일본, EU이면 높지 않다"며 "차세대 유전체 분석 기술(NGS)이 나온 뒤인 지난 2007~2008 보건복지부가 장내 미생물 관련 과제를 추진하려다 무산됐는데 이게 실기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현재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있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선진국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분석에는 한국의 발효 전통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다. 염규진 코엔바이오 대표는 "발표식품이 많은 한국은 갖고 있는 균주 자원이 많다"며 "분석기술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마이크로바이옴 관련 산업 내에서 융합 생태계가 만들어지지 않는 점이다. 토론에 참가한 전문가들은 정부·산업계·학계·의료계 사이의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정부의 각 부처들 사이에서도, 산업계의 기업들 사이에서도 소통과 협력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염규진 대표는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비가 적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각 부처별로 (각각 진행하는) 비슷한 과제가 많다"고 전했다. 이어 "한 회사가 균주 발견, 분석, 제품화까지 다 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잘 하는 분야에 집중한 각 주체들이 협력해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지만 한국에서는 협력이 피상적으로만 이뤄지고 있다는 말이다.
어렵게 제품화 단계까지 나아가면 규제의 벽에 막힌다는 산업계의 불만도 나왔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연구 결과물을 만들지만, 규제 기관의 제품 허가가 까다로운 탓이다.
이에 대해 반재구 제노포커스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관료제로 구성된 정부 공무원들의 운신의 폭이 좁은 탓이라고 분석하며 포괄주의 규제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괄주의란 허용하지 않는 행위만 규정하고 그 이외는 기업이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 체계다. 현재 국내 법 체계는 열거주의로 허용되는 행위를 나열하고 있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사업화 하는 데 장벽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반 CTO는 단계별로 결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실무를 맡는) 하위 공무원들이 보수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며 포괄주의 규제 체계를 도입해 기업들이 자유롭게 사업할 수 있도록 해주고 문제가 생기면 기업이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일관성 있는 정책도 요구됐다. 김윤근 MD헬스케어 대표는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초기 벤처기업은 (인력·자본 등) 자원이 부족하고, (이후에는) 허가까지 신경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최진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서기관은 적극적인 소통을 약속하며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성공사례를 만들자고 강조했다. 그는 마이크로바이옴 관련 기업들을 향해 "정부와 함께 하자"며 새로운 분야가 생기면 정부는 주로 학계와 일하지만, 기업과 함께 하면 정부는 정책 과제를 기획하는 데, 기업은 인허가를 받는 데 각각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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