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연 이외 요소로 연결된 가족을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요?"
올해 '어느 가족'으로 칸 영화제 최고 영예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그가 30일 서울시 종로구 씨네큐브에서 기자 간담회를 갖고 이번 영화를 기획한 계기를 이 같이 설명했다. '어느 가족'은 도둑질, 그리고 할머니가 수령하는 연금으로 연명하는 여섯 식구의 삶을 담은 영화다. 핏줄로 연결돼 있지 않지만 누구보다도 끈끈한 유대를 과시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전세계인이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일본에서만 벌써 300만 관객을 끌었으며, 중국, 대만, 홍콩, 한국 등으로 상영지를 넓히는 중이다.
그는 하나의 뉴스 보도를 접하고 '어느 가족' 시나리오 작업에 착수하게 됐다. 부모가 사망했는데 사망 신고를 하지 않고 연금으로 생활한 사람들의 사기 사건이었다. "당시 이 사건이 전국적 문제로 부상했는데요. 이를 보고 혈연이 아닌 형태로 공동체를 구성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가능성을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소재만 놓고 보면 아주 새로운 기획은 아니다. 일본 TV 드라마 '마더', 한국 영화 '가족의 탄생' 등 유사한 소재를 다룬 수작이 수두룩하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데는 고레에다 감독의 연기 연출이 큰 힘을 발했다는 평가다.
특히, 할머니로 분한 일본 국민 배우 키키 키린이 '고맙습니다'라고 입 모양만으로 속삭이는 부분은 이 영화 최고 명장면으로 꼽힌다. 그는 파도 치는 바다에서 노는 나머지 다섯 가족을 보면서 소리내지 않고 감사를 표한다. 온전히 키키 키린의 애드립으로 이뤄진 이 장면 때문에 고레에다 감독은 시나리오 전체를 수정했다.
"그 장면은 영화의 가장 첫 촬영분에서 나왔죠. 현장에서는 몰랐는데 편집실에 가져와서 보다 보니깐 키키 씨 입이 움직이더라고요. 입 모양에 맞는 단어를 계속 찾다 보니깐 '고맙습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배우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 영화의 핵심 주제에 대해 포착한 거죠. 이를 제가 간과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배우는 '연출자가 별로네'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저는 키키 씨의 '감사하다'는 말이 영화의 나중에 나올 수 있도록 대본을 수정했습니다. 배우가 꺼내놓은 것에 대해서 제가 다시 한번 받아칠 수 있도록 저는 늘 진검승부 하고 있습니다."
그는 단연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일본 영화 감독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등 최근 작품 다수가 한국에서 10만 관객을 넘겨 '아트버스터(아트와 블록버스터의 합성어)' 반열에 올랐다. 이달 26일 개봉한 '어느 가족'도 지난 29일까지 나흘 만에 3만8000명을 동원하며 또 한번의 고레에다 열풍을 예고하고 있다.
"무엇이 사람의 정서에 울림을 주고 감동을 주는지에 대해 거의 의식하지 않습니다. 제게 절실한 모티브를 파고 들다보면 관객에게 전해진다는 확신을 갖게 됐기 때문입니다. 스페인, 프랑스, 캐나다, 그리고 한국 관객 여러분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고 제 작품을 사랑해주시는 걸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는 미국 배우 에단 호크와 프랑스의 줄리엣 비노쉬가 출연하는 신작을 준비하기 위해 다음 주 파리로 들어갈 예정이다.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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