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현장에서] 반토막 난 권리금…을의 전쟁 시작
입력 2018-07-18 09:23 

2019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이 8,350원으로 결정됐습니다. 2017년 6,470원에서 2년 새 2천 원이 오른 셈인데, 편의점이나 빵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의 분노가 거셉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이에 대한 걱정보다는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못 지키게 돼서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습니다. 올초 신년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은 일시적”이라며 사회 약자를 보듬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 눈에는 영세 자영업자나 아르바이트생 모두 사회 약자인데, 문 대통령 눈에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아르바이트생 착취하는 자본가 정도로 비치나 봅니다.

■ 반토막난 권리금 어디서 찾나

서울 변두리의 한 빵집. 이 빵집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권리금이 4억 5천만 원을 홋가했습니다. (4억 5천만 원이면 부자라고 볼지 모르지만, 아파트 대출을 최대한 받아 겨우 인테리어를 하고 마련한 가게입니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이 가시화되고 1만 원 시대가 온다는 이야기에 지난해 권리금이 3억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서둘러 팔려고 했지만 아무도 인수하려 하지 않습니다.

내년부터 최저임금이 8,350원으로 오른다는 소식에 이제는 2억 원대로 추락할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파리바게뜨를 20년 넘게 운영해 온 70대 주인은 그동안 아침 시간에 일하다가 이제는 아르바이트생을 줄이고 저녁 시간에도 나와서 일하고 있습니다. 늘그막에 이게 무슨 고생이냐며, 유일하게 믿었던 권리금 수억 원을 날리게 생겼다고 울상을 짓습니다.


■ 건너편 가게가 먼저 망하기만 기다려

그런데 빵집 주인이 곰곰이 생각해보니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왜냐구요.
그 동네에는 다른 프랜차이즈 빵집도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다른 빵집이 먼저 망하거나 사업을 접는다면 오히려 수익이 나아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을과 을의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채산성을 맞추기 위해 아르바이트생을 정리하고, 당분간 가족들까지 총 동원할 기세입니다. 상대편만 먼저 망해준다면 반토막 난 권리금도 조금은 회복될 것이고, 그 때까지만 버티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가게 주인은 "최저임금으로 권리금이 날라가면서 건너편 가게가 망하길 바라는 자신이 너무 처량하다"고 말합니다.
다행히 착한 건물주를 만나 지난 3년간 월세를 안 올렸는데, 얼마나 지속될 지는 불안하기만 합니다.

■ 노후 대비 상가주택 공실만 가득

정부가 자영업자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고심하는 방안에는 건물 임대료를 많이 못 올리게 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높은 인건비 부담에 문을 닫는 가게가 많아지고 임차인이 없으면 임대료는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50~60대 월급쟁이들이 노후에 월세를 받으려고 상가주택을 사는 경우가 많은데, 상가는 텅텅 비고 몽땅 은행의 부실로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미국이나 유럽에 가보면 좋은 입지인 것 같은데 가게가 없는 것도 높은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해 장사를 못하는 것입니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 방향은 맞습니다.
하지만 당장 우리에게 다가올 현실은 지금 운영하는 가게를 손해 보지 않고 정리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생을 자르고, 가족들을 총동원하고, 건너편 가게가 먼저 망하기만 기다리는 것입니다.


◆ 정창원 기자는?
=> 현재 사회 1부 데스크.
1996년부터 기자 생활을 시작해 부동산 등 경제 분야를 비롯해 청와대와 국회 등 정치부 취재를 주로 했습니다.
부강한 나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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