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방송된 드라마 시그널에서 박해영(이제훈 분) 경위는 차수현(김혜수 분)과 함께 장기미제 전담팀에서 활동하며 사이코패스 살인범을 검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프로파일러로 등장한다. 범죄심리분석관으로 불리는 프로파일러가 드라마를 비롯한 미디어에 비친 모습은 연쇄살인이나 강력범죄 해결 도우미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 속 프로파일러는 사이코패스 살인마뿐 아니라 사기꾼과 성범죄자부터 절도범까지 다양한 범죄자와 마주쳐야 된다.
전국 7개 대학의 범죄심리학술 동아리가 모인 '대학생 범죄심리 연합회(이하 대범연)' 소속 학생 4명을 지난 4일 만나 그들이 경험한 프로파일러에 대한 오해와 진실,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2014년에 결성한 대범연은 범죄심리만을 다루는 최초의 대학생 활동 연합회다. 각 학교의 범죄심리 동아리가 정기적으로 공개토론회, 세미나 등을 열고 1년에 한 번은 학술 포럼을 개최한다. 가상의 범죄 시나리오를 만들어 범인의 심리를 분석하거나 현직 프로파일러를 초청하는 등 적극적인 학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로 심리학과 학생들로 구성된 대범연엔 중학생때부터 프로파일러를 꿈꾸며 달려온 학생부터 단순 흥미로 가입한 학생까지 다양하다. 총 70여 명의 대학생이 속해 활동 중인 대범연은 범죄심리 전공을 생각하는 고등학생 대상으로 1대 1 진로 상담도 한다.
대학생 범죄심리 연합회 회원은 입을 모아 "현실 프로파일러는 드라마와 다르다"고 말했다. [사진 = 김민지 인턴기자]
대범연 회원들은 "실제 프로파일러들은 강력 살인 범죄뿐만 아니라 사기·절도·성범죄 등 다양한 범죄를 다룬다"고 입을 모았다. '프로파일링'이란 학문은 인간의 비정상적 행동 전체에 대한 연구기 때문이다. 김승혜 대범연 회장(22·성신여대 3년)은 "프로파일러라 하면 잔인하고 자극적인 사건을 연관 지어 떠올리기 쉬운데 그래서 '로망'이 있는 것 같다"며 "하지만 아무리 프로파일러라도 직접 사이코패스 범죄자와 마주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덧붙였다.프로파일러는 범죄자만 다루는 게 아니라 피해자 심리도 파악한다. 프로파일러들은 특히 성범죄 수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막기도 한다. 최근 권력형 성범죄를 폭로하는 미투 운동이 일어난 후 경찰은 심리학을 전공한 '피해자 심리 전문요원'을 확충하는 추세다. 일종의 피해자 전문 프로파일러다.
국내 프로파일러들은 미디어, 특히 드라마 '시그널' 등에서 보여진 모습과 다르다. 보통 프로파일러가 '탐정'처럼 범죄 수사 초반에 개입돼 범인을 추적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프로파일러들의 주된 업무는 이미 잡은 범인의 심리를 파악하는 일이다.
창립 멤버이자 현재 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 석사 과정 중인 이주원 씨(32)는 "대범연 활동을 하며 프로파일러를 꿈꾸는 고등학생들을 만나보면 주로 드라마 속에서 다양한 사건을 파헤치는 멋진 프로파일러들을 보고 온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최근 '강진 여고생 사건' 등 특이 케이스를 제외하곤 우리나라는 범죄 유형이 다양하지도 않고 한 프로파일러가 한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담당하지도 않는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7월 열린 대학생 범죄심리 연합회의 학술 포럼. 고등학생들도 참가해 발표를 듣고 1대 1 진로상담도 받았다. [사진 = 대학생 범죄심리 연합회 페이스북]
우리나라에서 프로파일러가 되려면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경찰공무원 시험을 치르고 관련 부서에 있다가 프로파일러 공채에 지원해 붙는 방법, 그리고 범죄심리 대학원에 진학하는 방법이다. 우리나라엔 2016년 기준 25명의 프로파일러가 활동하고 있다.대범연 창립멤버 중 한 명인 박승원 씨(25·아주대 4년)는 프로파일러를 고민하다 최근 다른 진로를 모색했다. 그는 "프로파일러만 바라고 범죄심리를 공부하기엔 위험부담이 컸다"며 "현재는 다른 분야에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블루오션'이라는 점에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프로파일러가 되기 위해 경기대학교 대학원 범죄심리학과에 진학, 국내 대표적 프로파일러 중 한 명인 이수정 교수 밑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있는 홍정윤 씨(26)가 그랬다. 그는 "잘만하면 내가 이 분야의 선구자 대열에 오를 수 있단 사실이 동기부여가 된다"며 "다만 범죄심리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적다보니 이수정 교수님 밑에 들어가기까지 경쟁이 너무 치열했다"고 토로했다.
대범연의 활동 목표는 범죄심리학을 공부하고 프로파일러가 되고싶은 이들을 서로 끌어주는 것이다. 대범연에 속한 대학원생은 대학생에게, 대학생은 고등학생에게 멘토가 되어주려 노력한다. 김승혜 회장은 "학술 포럼을 고등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을 데리고 참석하기도 한다"며 "오는 28일에도 학술 포럼을 여는데 중·고등학생들도 와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범죄 전반적인 이해에 관한 주제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디지털뉴스국 김민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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