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단독] "10년만에 새 펀드…앞으로 100년은 아시아"
입력 2018-07-01 17:17 
가치주펀드 외길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은 유난히 고되게 일하는 펀드매니저다. 58세 현역 최고투자책임자(CIO)로서 지금도 매일 아침 A4 용지에 주식 투자 현황을 뽑아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그를 보면 천성이 그렇다고밖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과정이 고됐고, 그나마도 하나같이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 강 회장은 2008년 에셋플러스를 설립하면서부터 펀드를 직접 판매하겠다고 나섰다. 지점도 없는 신생 자산운용사 입장에서 신규 계좌 하나가 아쉬운데도 은행이나 증권사 지점에서 편하게 펀드 파는 걸 거부했다.
지금도 상장지수펀드(ETF)에는 1원도 투자하지 않는다. 100% 개별 종목에만 투자한다. 그에게 샛길이나 우회로는 없다. 국민연금이 단기 실적에 치중한다며 위탁운용 자금을 반납한 것이나 주식의 본산 여의도를 거부하고 일찌감치 판교로 본사를 이전한 것은 모두 '가치투자'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2년 전 삼성전자 주가가 코스피를 견인하며 한창 오르는데도 가치투자펀드가 지수 비중의 25%를 넘는 삼성전자를 편입할 수는 없다며 한 주도 남김없이 팔아치운 게 바로 그였다.
이렇게 강 회장의 고독한 원칙주의로 키운 '리치투게더펀드'가 올해 10년을 맞았다. 오는 4일 펀드 10주년 기념 운용보고회를 하기로 한 그를 매일경제신문이 지난달 28일 판교 본사에서 미리 만났다. 인터뷰 도중 '원칙'이라는 단어를 유난히 여러 차례 힘주어 말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는 이를 화학비료 하나 없이 키운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직접 내다파는 유기농 농사꾼의 마음이라고 비유했다. 시장과 타협하지 않는 '유기농 가치투자펀드'를 운용하는 CIO 마음일 것이다.
"은행이나 증권사에 가면 '요즘 펀드 뭐가 좋아요'라고 물어보고 펀드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그럼 창구 직원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판매수수료 높고 지금 시점에 수익률이 높은 펀드를 소개하게 되겠죠. 가입하고 나면 수수료는 빠져나가고 수익률은 떨어지고 그게 공모펀드 시장에서 악순환이 되는 겁니다."
에셋플러스에서는 이런 문제를 피하려고 직접판매·소수펀드 원칙을 세웠다. 판매 중인 펀드가 달랑 3개. 올 상반기 시중자금을 끌어모았던 코스닥벤처펀드나 ETF포트폴리오펀드 따위는 없다. 오로지 주식에 투자하는 주식형 액티브펀드(리치투게더펀드) 중에서 투자 지역에 따라 코리아·차이나·글로벌펀드로 구분해놨을 뿐이다. 지금은 증권사나 온라인을 통해 펀드 가입이 가능해졌지만 초기에는 직접 판매만 했다. 여러 개 펀드가 아니라 이 세 개에 모든 펀드매니저가 매달려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는 게 강 회장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2008년 7월 출시된 코리아리치투게더펀드는 한국 주식에만 투자해서 10년 수익률 156%를 기록 중이다.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의 4배 수준, 은행 복리 이자로도 연 9%가 넘는 수치다. 시장수익률을 따라가는 ETF나 삼성전자·CJ 등 초대형주를 빼고 오로지 가치주를 발굴해 이 숫자를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우여곡절이 없었던 건 아니다. 강 회장은 펀드를 내놓기 두 달 전부터 전국을 직접 자전거로 돌면서 펀드 강의를 했다. 그렇게 모은 돈이 1600억원. 하지만 펀드 출시 직후인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왔고 바로 절반이 환매가 들어왔다. 강 회장은 투자자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시장이 폭락하면 환매를 할 게 아니라 좋은 주식이 싸졌으니 더 사야 한다는 이론을 설파했다. 시장의 공포를 즐기는 그를 믿고 10년 전 계좌를 개설했던 2300여 명은 아직도 펀드를 보유하고 있다. '100년 갈 펀드만 만든다'는 그의 원칙을 믿고 따라온 대가가 수익률인 셈이다.
그는 "좋은 주식을 싸게 사는 가치투자의 철학은 전 세계 어디나 같지만 한국 주식시장에서 100년을 투자할 만한 기업을 찾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재무제표가 좋은 기업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이 좋은 기업을 사야 하는데 그런 기업이 별로 안 보인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강 회장이 준비 중인 게 '슈퍼 아시아펀드'다. 10년 만에 새로운 액티브펀드를 내놓는 셈이다. 베트남·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10개국에서 비즈니스 모델이 좋고, 시장에서 검증된 기업 중 특히 미래 기업 환경에 적응 가능한 기업만 산다는 3대 투자 원칙을 지켜나갈 생각이다. 그동안 베트남의 경제성장성 등을 목도하면서도 주식시장의 유동성이 작아서 투자를 꺼려왔던 그이지만 여러 국가에 분산투자한다면 이런 위험을 피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금 시작해서 100년을 투자한다면 아시아라는 것. 그의 고된 여정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한예경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