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원대 상속세를 내지 않은 혐의를 받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8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했다.
조 회장은 이날 오전 9시 23분께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도착했다. 감색 양복 차림으로 넥타이는 메지 않은 채 굳은 표정으로 포토라인에 선 조 회장은 "국민께 할 말이 있냐"는 질문에 "죄송하다"면서 "상속세를 왜 내지 않았냐"는 물음에는 "검찰에 모든 것을 말씀드리겠다.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또 '땅콩 회항' 사건 당시 조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변호사 비용을 회사가 부담했단 의혹과 횡령·배임 혐의를 인정하냔 물음엔 "죄송하다"라고 짧게 답했으며, 포토라인에 약 30초 정도만 머문 뒤 빠르게 조사실로 향했다. 회장직을 물러날 생각이 있냔 질문엔 답변하지 않았다.
현장에는 땅콩 회항 사건 피해자인 박창진 대한항공 사무장과 대한항공 직원연대 소속 직원이 자리해 퇴진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불법 안하무인 갑질 원조 조양호',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면 더이상 안전은 없다' 등의 내용이 담긴 피켓을 들었다.
박 사무장은 기자들을 향해 "조 회장 일가에 대한 수사가 유야무야되고 있어 안타깝다"며 "조 회장이 책임 지고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부친인 고(故) 조중훈 전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 2002년 사망한 뒤 프랑스 부동산과 스위스 은행 계좌 등을 상속받는 과정에서 이를 제대로 신고하지 않아 500억원대의 상속세를 내지 않은 혐의를 받는다. 서울지방국세청은 지난 4월 조 회장을 조세포탈 혐의로 고발했으며, 검찰은 해당 사건을 기업·금융범죄전담부인 형사 6부에 배당해 수사해왔다.
앞서 같은 혐의로 조 회장의 동생인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과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회장이 지난 25일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았으며, 고(故)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의 부인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이 26일 소환조사를 받았다. 조 회장의 4남매 중 해외에 체류 중인 장녀 조현숙 씨를 제외하곤 모두 검찰 조사를 받은 셈이다. 납부하지 않은 상속세와 과태료 등을 포함하면 규모는 1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검찰은 조씨가 국내에 들어오면 소환할 예정이다.
검찰은 조 회장의 2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도 수사 중이다. 검찰은 조 회장 일가가 한진그룹의 계열사 건물 관리 업무를 부동산 임대·관리업을 하는 계열사에 몰아줘 회사에 손해를 끼치고, 기내 면세품을 납품하는 과정에서 '통행세'를 부당하게 챙긴 것으로 보고 있다. 통행세란 하는 역할이 실제론 없으면서 중간에 끼어들어 챙기는 수수료를 뜻한다. 검찰은 조 회장이 처남의 기내식 납품 업체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도 살펴보고 있다.
조 회장의 차녀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 사태 이후 조 전 전무와 조 전 부사장,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이 줄줄이 포토라인 앞에 섰지만 조 회장이 이번 사건으로 직접 검찰 소환 조사를 받는 건 처음이다.
조 회장은 2015년 9월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처남 취업청탁 의혹과 관련해 참고인 신분으로 서울남부지검에서 조사를 받은 바 있으며, 지난해 9월 회삿돈을 빼돌려 자택공사비로 쓴 혐의로 경찰청 특수수사과에서 조사를 받은 바 있다.
조 회장의 차녀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유리컵에 든 음료를 광고 대행사 직원들에게 뿌린 혐의 등으로 지난달 1일 서울 강서경찰서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으며, 지난달 28일과 30일엔 조 회장의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이 특수상해 및 상습폭행 등의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출석했다. 이어 지난 4일과 20일엔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았으나 영장은 기각됐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달 24일 외국인 가사도우미 불법 고용 의혹으로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 소환됐다. 조 전 부사장이 포토라인 앞에 선 것은 땅콩 회항 사건 이후 4년 만이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 4일 밀수·탈세 혐의로 인천본부세관에 출석해 조사를 받기도 했다.
검찰은 이날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조 회장에 대한 신병처리 방향을 검토할 방침이다.
[디지털뉴스국 배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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