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그랩왕국될 줄 알았는데, 고젝·라이드·MVL 등 도전장
입력 2018-06-20 16:19 

차량공유기업의 원조 우버와 후발주자 그랩은 최근 수 년간 동남아시아에서 피말리는 경쟁을 벌였다. 6억 명의 인구를 가진 거대 동남아의 차량공유시장은 우버와 그랩이 양분해오다 지난 3월 철저한 현지화를 앞세운 그랩이 우버를 밀어내는데 성공하면서 동남아 차량공유시장이 '그랩 왕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난 지금, 그럴 가능성은 낮은 것 처럼 보인다. 그랩의 새로운 경쟁자들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20일 스트레이츠타임스 등 싱가포르 현지 매체에 따르면 동남아 차량공유시장의 메카이자 최대 승부처인 싱가포르에 최대 9개 업체가 서비스를 출시했거나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그랩과 우버와의 승부가 '시즌1'이었다면 앞으로 새 경쟁사들과의 경쟁인 '시즌2'가 펼쳐질 전망이다.
현재 가장 쟁쟁한 경쟁자로 꼽히는 업체는 '인도네시아의 우버'로 불리는 고젝이다. 고젝은 조만간 싱가포르를 비롯해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 4개국에 진출한다. 차량공유서비스 뿐 아니라 인도네시아에서 히트를 친 신선식품·커피·소형 택배 등 배송을 포함한 다양한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해외 진출을 위해 5억 달러(약 5500억원)를 쏟아붓는다.
그랩처럼 현지 택시회사와 제휴를 맺고 등록 운전기사를 최대한 빠르게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 등장해 인도네시아의 유일한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인 미상장 벤처기업)인 고젝은 구글과 텐센트 등 글로벌 IT기업들로부터 거액의 투자도 유치했다. 나디엠 마카림 창업자겸 최고경영자(CEO)는 그랩을 겨냥해 "소비자는 선택할 수 있을 때 행복하다"며 선전포고를 했다.

싱가포르 토종 업체인 라이드(Ryde)는 그랩이 우버를 인수·합병한 뒤 고용승계 등에서 혼란이 발생한 틈을 타 차량 호출 서비스인 '라이드 엑스(Ryde X)'를 출시했다. 라이드는 그동안 통학 학생들이 차량을 공유하는 '라이드 스쿨'과 애완동물과 차를 같이 타는 '팻 라이드' 등의 서비스를 내놨는데 이번 기회에 사업 영역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라이드 엑스는 짧게는 10분, 길게는 일주일 미리 차량을 예약할 수 있는 서비스도 갖췄다. 무엇보다 운전기사가 부담하는 수수료를 10%로 낮춰 운전기사들 사이에서 화제다. 그랩의 수수료는 20~30% 수준이다. 라이드 관계자는 "등록 기사 수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고 전했다.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업체도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다음달 차량호출 서비스를 출시하는 엠브이엘(MVL)은 운전기사로부터 수수료를 일절 받지 않을 예정이다. 그랩은 승객을 찾아주는 대가로 운전기사로부터 수수료를 챙겨서 수익을 올리는데 MVL의 모델은 차량호출업계의 상식을 뒤집는 것이다. MVL은 기사와 승객에게 가상화폐를 지급하고 거래소에서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결제시스템도 구축한다.
싱가포르 현지 매체들은 "그랩이 운전기사가 부담해야하는 수수료를 올릴 것이라는 염려가 제기되면서 우버 기사들이 그랩으로 옮기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며 "수수료가 0(제로)인 업체가 등장하면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MVL은 수수료을 받지 않는 대신 운전기사와 승객들이 생산하는 모빌리티 데이터를 수집해 이를 사업화할 방침이다. 말레이시아 업체인 댁시(DACSEE)도 내년 상반기 블록체인을 적용한 차량호출 플랫폼을 들고 싱가포르에 진출할 계획이다. 댁시 측은 "현재 25% 수준인 수수료가 블록체인 기술로 1~2%로 대폭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에서 우버와 현지업체 올라(Ola)에 이어 세번째로 큰 차량호출 현지업체인 주그누(Jugnoo)도 지난달 그랩을 겨냥해 싱가포르에 상륙했다. 주그누는 운전기사가 운임을 책정하고 승객이 가장 저렴한 운임을 제시한 기사를 고르는 이른바 '경쟁입찰' 방식을 도입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서비스를 처음 시작한 그랩은 싱가포르로 본사를 옮겼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는 인구만 놓고 보면 시장 규모가 작지만 다양한 차량 호출 관련 실험이 가능하고 동남아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기에 좋아서다. 동남아 각국 정부들은 가장 선진국인 싱가포르 사례를 참고하기 때문에 싱가포르에서 성공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스트레이츠타임스는 "차량호출시장의 진입장벽은 의외로 낮다"며 "그랩이 우버를 인수·합병한 뒤 여러 업체가 그랩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어 업계 판도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임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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