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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포커스] 김경문 감독까지…떠나는 감독들의 뒷모습은 어땠나
입력 2018-06-05 06:44 
김경문 감독이 7년 만에 NC지휘봉을 내려놨다. 사진=MK스포츠 DB
[매경닷컴 MK스포츠 안준철 기자] NC다이노스 김경문 감독이 7년 간 잡았던 지휘봉을 내려놨다. 사실상 경질이다.
NC는 지난 3일 밤 ‘현장 리더십 교체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김경문 감독 이후 유영준 단장을 감독대행으로 정해 남은 시즌을 치른다”고 밝혔다. 김 감독은 구단 고문으로 자리를 옮긴다. NC는 2011년 8월 NC 창단 감독으로 부임, 지난 7년간 신구세대의 조화, 무명선수의 과감한 발탁 등으로 다이노스를 성장시키는데 기여했다. 구단의 고문으로서 호칭과 예우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해임 또는 경질을 복잡하게 빙빙 돌려서 설명한 것이다.
김경문 2004년 두산 베어스 사령탑을 맡아 2011년 중반 사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막 창단한 NC 창단 감독에 부임했다. 두산 시절부터 김 감독은 성적을 보장하는 지도자로 명성이 높았다. 두산 사령탑 첫해 정규시즌 3위를 이끌었고, 2005년에는 한국시리즈로 이끌었다. 2006년은 5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지만,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고, 그 중 2007~2008년에는 팀을 한국시리즈로 올렸다. 다만 당시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SK와이번스에 2년 연속 패퇴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신생팀 NC에서도 단기간에 팀을 리그의 강자로 만들었다. NC의 1군 2년차였던 2014시즌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다. 2016년에는 창단 최초의 한국시리즈 진출도 이뤘다. 하지만 우승 반지는 인연이 없었다. 김경문 감독의 우승 경력은 국가대표팀 수장으로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전승 금메달이 유일하다.
하지만 올 시즌 NC가 3일 삼성 라이온즈에 스윕을 당하며 20승39패로 최하위에 떨어진 상황에서 김 감독의 지도력에 생채기가 생겼다. 결국 김 감독은 중도퇴진하게 됐다. 시즌 중반 불거진 선수단과의 불통 논란, 그리고 김진성 벌투 논란 등이 명감독의 명성에 흠집을 냈다.
보통 감독이 팀을 떠나는 모습은 두 가지다. 경질(해임) 또는 사퇴다. 경질은 구단이 해고하는 것이다. 보통 계약기간 중에 일어난다. 이 경우 감독의 연봉은 계약기간까지 보전이 된다. 사퇴는 감독이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중도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계약의 해지의 주체가 감독이라는 점에서 연봉이 보전되지 못한다. NC가 고문으로 예우 등을 거론하면서 김 감독의 계약기간인 2019년까지 연봉을 보전하기로 했으니 김 감독은 경질인 셈이다. 이 밖에 재계약이 불발 되는 경우, 또는 건강이 좋지 않아 물러나는 경우도 있다. 정상의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기도 하지만 극히 드물다.
프로야구 감독은 해군 제독,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함께 남자들이 선망하는 직업 중 하나다. 엄청난 권한을 손에 넣고 팀을 이끄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적에 따라 파리 목숨인 것도 사실이다. 과거 프로야구에서도 감독이 팀을 떠나는 이유 중 다수가 성적 때문이었다. 2001년 임기 중 별세한 고 김명성 롯데 감독과 같은 사례도 있긴 하지만, 경질과 사퇴, 재계약이 불발되는 경우 대부분이 성적 부진이다.
다만 1983시즌이 끝난 뒤 OB에서 삼성으로 옮긴 김영덕 감독이나, 2000시즌이 끝난 뒤 해태에서 삼성으로 옮긴 김응용 감독의 경우는 스카우트 성격이 강하다. 2006시즌 후 현대에서 LG사령탑으로 옮긴 김재박 감독도 마찬가지다. 7개 구단 사령탑을 역임한 김성근 감독의 경우에는 구단 수뇌부와의 마찰이 팀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였다. 물론 지난해 한화에서 중도 퇴진할 때는 성적 부진이 큰 이유였다.

맡은 팀을 한국시리즈에서 10번이나 우승(해태 9차례-삼성 1차례)으로 이끈 김응용 감독은 삼성 사령탑을 맡았던 2004년 현대와의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에 그친 후 감독직을 제자인 선동열 감독에게 넘기도 구단 사장으로 영전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2013시즌 한화 감독으로 돌아와 이듬해 2014시즌까지 임기를 채우고 성적 부진을 이유로 재계약이 불발됐다. 한국을 대표하는 명장들도 마지막은 성적 부진에 따른 용퇴였다.
국민감독으로 불리는 김인식 감독도 맡은 팀들의 계약기간은 지켰지만, 결국 재계약 불발 사유가 성적 부진이었다. 1992시즌 후 쌍방울과, 2003시즌 후에는 두산, 2009시즌 후 한화와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 김 감독은 1995년부터 지휘봉을 잡은 OB(두산)에서는 1995년과 2001년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고, 한화에서는 준우승에 그쳤지만 2006년 한국시리즈에진출시켰다.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감독들이 팀을 떠나는 뒷모습은 성적 부진이나, 구단과의 불협화음이 대다수 이유였다. 다만 2011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토니 라루사 감독은 우승 3일 후 은퇴를 선언하고 자리에서 내려왔다.
jcan1231@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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