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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의 야구생각] 희대의 사기꾼에 농락당한 한국 프로야구
입력 2018-05-30 09:35  | 수정 2018-06-04 16:49
히어로즈의 불법 뒷돈거래가 하나씩 드러나는 가운데 이장석 대표의 2008년 팀 창단 초기 행보도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MK스포츠 DB
2008년 6월은 히어로즈의 구단 역사 상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창단 3개월여 만에 메인스폰서(우리담배)는 떨어져 나갔다. 돈줄이 막혔다. 당장 한국야구위원회(KBO)에 가입금을 내야 하는데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당시 히어로즈는 가입금 120억 원 가운데 10%인 12억 원을 창단과 동시에 내고, 나머지 108억 원은 6개월 마다 4차례에 걸쳐 분납하기로 했다. 2008년 6월30일은 1차 분납금 24억 원의 납부 마감시한이었다.
이장석 대표는 그야말로 똥줄이 타들어갔다. 납부기한을 지키지 못할 경우 회원자격을 박탈당할 수 있었다. 실제 몇몇 구단들은 히어로즈의 불투명한 경영상태와 부실한 자금상황을 거론하며 노골적으로 퇴출시키자는 의견을 드러내기도 했다. 자금력이 바닥난,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처음부터 자금력이 없었던 히어로즈는 2008년 시즌 시작과 동시에 심각한 운영난에 직면했다. 직원들 임금은 체불됐고, 선수단 원정 숙소비용도 지급하지 못했다.
이장석 대표는 투자자를 물색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워낙 다급한 형편이라 쉽지 않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KBO였다. 히어로즈를 이대로 공중분해 시킬 순 없는 노릇이었다. 조급해진 신상우 KBO 총재와 하일성 사무총장은 이장석 대표를 불렀다. 히어로즈의 가입금 납부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KBO 수뇌부와 마주 앉은 이장석 대표는 10개가 넘는 통장을 내밀었다. 이 대표는 ”이 통장 안에 수십억 원의 돈이 들어 있다. 이번 주 내로 납입을 완료 하겠다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그 통장은 한 마디로 ‘사기였다. 통장 안에 잔고는 일원 한 푼 없었다. 벼랑 끝에 몰린 이장석 대표가 KBO를 상대로 공갈을 친 것이다.
놀랍게도 신상우 총재 등은 이장석 대표가 보여준 통장을 확인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대표의 말을 믿은 건지, 아니면 통장을 열어보는 것이 두려워서 인지 알 길이 없다. 만일 그 때 그 통장을 확인했더라면 히어로즈는 일찌감치 프로야구 역사에서 사라졌을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프로야구 전체를 뒤흔드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는 사이 2008년 6월30일이 넘어갔다. 납부기한을 1주일 넘긴 7월7일 이장석 대표는 가입금 1차 납부액 24억 원을 KBO 계좌에 입금시킨다. 가까스로 퇴출 위기를 넘겼다. 바로 재미사업가 홍성은 레이니어 그룹 회장으로부터 긴급자금 20억 원을 투자받은 것이었다.
훗날 이장석 대표는 자신의 생명줄을 이어 준 홍성은 회장의 뒤통수를 친다. 유망주를 키운다는 명목으로 트레이드를 하면서 뒤로는 현금을 챙겨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사기와 횡령 배임으로 구치소에 들어가 있는 지금도 히어로즈 구단주 행세를 한다. 지난 10년, 한 젊은 기업 사냥꾼에 놀아난 한국 프로야구의 모습이다.
[매경닷컴 MK스포츠 편집국장 dhkim@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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