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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닝페이퍼 적발에 벌금까지…‘LG바보’, 왜 부끄러움은 남의 몫인가
입력 2018-04-20 17:00  | 수정 2018-04-23 00:59
류중일(사진) 감독이 19일 KIA전을 앞두고 전날 벌어진 사인훔치기에 대해 사과했다. 사진=황석조 기자
[매경닷컴 MK스포츠(서울 도곡동) 안준철 기자] 1990년 중반 LG트윈스는 프로야구에 새로운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뉴욕 양키스를 연상케 하는 핀 스트라이프 유니폼에, 1994년 혜성같이 등장한 유지현·서용빈·김재현 신인 3총사까지, 그리고 프로야구 최초로 도입한 투수 분업화 시스템(일명 스타 시스템)은 신바람을 불어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성적도 좋았다. MBC청룡에서 LG트윈스로 간판이 바뀐 1990년 서울 연고팀 최초의 한국시리즈 우승부터 1994년 우승, 1995년 정규시즌 2위(플레이오프 탈락), 1997·1998년 준우승 등 LG는 가을야구 단골손님이었다. 자율야구 또는 신바람 야구로 불리는 LG의 플레이는 술 취한 아저씨팬들로 가득했던 야구장 풍경을 바꿨다. 젊은 팬 또는 여성 팬들이 유입되면서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서울 잠실야구장을 홈으로 쓰는 최고 인기팀이 됐다.
이런 LG와 맞붙는 잠실구장 3루쪽 원정 응원단들은 종종 LG, 바보!”라고 응원을 펼치기도 했다. LG가 경기 중 실수를 하면, 목소리가 커졌다. LG팬들은 부러워서 하는 짓”이라고 치부하고 넘겼다. 그만큼 인기구단을 응원한다는 자부심이 강했다.
하지만 2000년대와 201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암흑기를 겪으며, LG는 조롱 대상으로 전락했다. 2013년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서 LG의 암흑기가 끝났지만, 2018시즌 LG는 대형사고를 쳤다. 이제 상호 비방을 금지하는 분위기에서 LG, 바보!”라는 응원은 들을 수 없게 됐지만, 사상 초유의 커닝페이퍼 사태로 구단, 감독, 코칭스태프가 줄줄이 벌금을 먹게 되면서 LG, 바보!”라는 조롱이 다시 등장했고, 이를 듣고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다.
LG는 지난 18일 광주 KIA타이거즈전에서 더그아웃 통로에 KIA의 구종별 사인이 적힌 종이를 붙여서 활용했던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LG 측은 전력분석에서 정보전달을 하는 내용 속, 주자의 도루 시 도움이 되기 위한 내용이 있었다”고 설명하면서 분명 잘못된 일이다. 향후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머리를 숙이긴 했다.
하지만 공연히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은 사안이 심각했다. 대부분의 야구인들은 사인 훔치기도 경기의 일부라고 한다. 그만큼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사인을 상대에 간파당한 쪽이 어리석다는 분위기다. 그러나 LG는 이를 대놓고 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비유하자면, 시험시간에 답이 적힌 커닝페이퍼를 칠판에 붙여놓은 것이다.
20일 KBO상벌위원회는 LG구단에 벌금 2000만원, 류중일 감독에 제재금 1000만원, 유지현-한혁수 코치에 제재금 100만원 징계를 내렸다. 사진(서울 도곡동)=안준철 기자
이는 윤리적인 비난은 물론이고, 명백한 규정 위반으로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이었다. 2018 KBO리그 규정은 제26조에 불공정 정보의 입수 및 관련 행위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사인 훔치기에 관한 규정이다. 제1항은 ‘벤치 내부, 베이스코치 및 주자가 타자에게 상대 투수의 구종 등의 전달 행위를 금지한다, 2항의 주된 내용은 정보기기 사용금지인데, ‘벤치 외 외부 수신호 전달 금지, 경기중 외부로부터 페이퍼 등 기타 정보전달 금지라고 정하고 있다.
결국 KBO는 20일 상벌위원회를 열고, LG의 부정행위에 대해 심의했다.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2시간 동안 열린 상벌위원회는 LG구단에 벌금 2000만원, 류중일 감독에 제재금 1000만원, 1-3루 코치인 한혁수·유지현 코치에 각각 제재금 100만원을 부과했다. 구단 책임자인 양상문 단장에게는 엄중 경고가 내려졌다.
강력한 제재다. 감독 제재금으로는 역대 최고액이다. 구단은 물론 감독과 코치에 제재금 징계가 내려진 것도 이례적이다. 상벌위원회는 LG가 사과문과 소명 자료를 통해 해당 사안이 타자들에게 이익을 주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으며 전력분석팀의 독단적인 행동이었다고 설명했으나, 이는 구단이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일반적이지 않은 행위로 리그 전체의 품위와 신뢰를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밝혔다. 어찌 보면 올해 부임한 정운찬 커미셔너가 클린베이스볼을 강조하기에 강한 제재는 예상된 결과였다.
어리석은 행위로 인해 부끄러움은 팬들의 몫이 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LG팬은 최근 안 좋은 쪽으로는 LG가 최고다. 이런 팀을 응원해야하는지 자괴감이 든다”며 바보같은 짓 때문에 팬들도 바보 취급을 받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jcan1231@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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